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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레오 14세 즉위

레오 13세의 뒤를 이을 것인가

by 이완

2025년에 새 교황 레오 14세가 즉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첫 남미 출신 교황이었는데, 이번에는 첫 북미 출신 교황이다. 아프리카나 아시아가 아니라 또 다른 신대륙 추기경을 선출한 것을 보면, 너무 급진적인 변화는 피하면서도 기존 변화 속도를 따라가겠다는 의도인 걸까. 만약 그렇다면 가톨릭 교회 다운, 보수적인 선택이다.

새 교황이 고른 '레오'라는 이름은 19세기에도 대혼돈을 겪었다. 당시 유럽은 산업화와 노사 갈등이라는 새로운 사태에 휘말렸다. 일부 국가는 강력한 무력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했지만, 그럴수록 노동운동은 과격해질 뿐이었다. 레오 13세가 활약할 즈음에는 주요국이 한 번 씩 혁명을 겪어 봤을 정도였다.

19세기에는 종교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더 강했다. 당시 가톨릭 교회는 유럽의 큰 어른으로서 성도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했다.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교황 성하의 회칙 '새로운 사태'였다. 이 회칙을 통해, 레오 13세는 윤리적인 자본주의를 교회의 방침으로 선포했다. 공산주의와는 선을 그으면서도, 자본가에 의한 착취와 압제를 금지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이 회칙은 유럽 정치를 크게 바꿨다. 보수적인 노동운동과 기독교 사회주의가 확산하는 데 기여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기독교민주주의자들이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나름의 복지국가를 채택할 때 윤리적 근거를 제공했다. 특히 독일의 기독교민주주의자들은 가톨릭 교회의 회칙에 따라 노사 공동결정제도 등을 적극 실현했다. 레오 13세의 휘광은 지금도 유럽 정치의 중심에 있는 셈이다.

새 교황이 무슨 의도로 '레오'라는 이름을 이어받았을까. 해외 언론을 통해 접한 이야기를 참고하면, 전임 레오 교황처럼 격변의 중심에서 연대를 외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좌우 모두 극단주의로 치닫는 지금, 가톨릭 교회가 레오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중도 노선을 제시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회의주의자이면서도 교회의 권위를 무시하지 않는 입장에서, 새 교황의 첫 회칙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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