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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Jan 19. 2023

스웨덴이 불평등해도 불평등하지 않은 이유.

통계에 나타나는 자산 격차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구글 드라이브에는 다른 사람과 자료를 공유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자료를 갖고 있어도 공유할 사람을 설정해 두지 않았다면, 사용자만 자료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공유할 사람을 설정해 두었다면, 더 많은 사람이 드라이브 안에 있는 자료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드라이브의 주인이 사용자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누가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가'보다, '누가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가'가 중요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과 우리나라의 경제를 비교할 때에도 이런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소득을 굉장히 고르게 분배하는 스웨덴은 우리나라만큼 또는 우리나라 이상으로 자산 격차가 큰 나라입니다. 이런 자산 격차를 근거로, 일부 우파는 스웨덴 모델이 불평등을 고착시키고 기회를 박탈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은 스웨덴과 우리나라의 차이점을 무시한 것입니다. 스웨덴의 자산 불평등은 우리나라의 자산 불평등과 맥락이 다릅니다. 스웨덴의 자산은 소유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통제를 받지만, 우리나라의 자산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스웨덴에서는 '누가 형식적으로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가'보다, '누가 실질적으로 자산을 통제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사회민주주의 정부가 오랫동안 집권한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산업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다른 나라처럼, 스웨덴에서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엄연히 주주들입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다르게,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은 주주 뿐만이 아닙니다. 스웨덴에서는 노동조합과 노동자 대표가 경영에 깊게 관여합니다. 형식적으로 기업을 소유하는 사람은 주주이지만, 실질적으로 기업을 통제하는 사람은 주주와 노동자입니다. 계정의 주인이 아닌 사람도 구글 드라이브 속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것처럼, 스웨덴에서는 기업 소유자 이외의 사람들도 기업 경영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기업 뿐만이 아닙니다. 스웨덴에서는 주택이나 사립학교도 형식적 소유자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사회민주주의 국가 스웨덴은 거의 모든 주요 자원을 사회적 의무에 종속시켜 왔습니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사적 소유권을 전면 폐지하는 공산주의를 거부하는 대신, 소유자가 소유권을 사회적 의무에 부합하게 행사하도록 규제하는 데에 전념해 왔습니다. 개인이 재산을 소유할 권리 그 자체가 아니라, 순전히 사적인 이익만을 위해 중요한 자원을 전유할 권리를 폐지한 것입니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런 노력을 '사회화'라고 불렀습니다.


사회화된 스웨덴에서, 노동자는 언제 갑자기 해고를 통보받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부로부터 보호받으며, 주주와 공존하는 경영 파트너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웨덴의 세입자는 건물주의 갑질을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부가 무리한 임대료 인상이나 부당한 퇴거 요구를 감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웨덴 사람 다수는 기업 지분과 주택을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상당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통계에 나타나는 자산 격차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스웨덴은 우리나라와 결이 다릅니다. 사회주의에 가장 근접한 자본주의 경제를 운용 중인 스웨덴은 우리나라처럼 소유와 의무를 분리하지 않습니다. 그런 스웨덴을 산업민주화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우리나라와 같은 선상에 둔다면, 당연히 사실을 잘못 해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스웨덴은 엄연히 사회민주주의 국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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