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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일랜드에서 폭동이 일어나다

이민자를 향한 공격이 보여주는 것

by 이완

북아일랜드에는 루마니아계 이민자도 살고 있다. 얼마 전 루마니아계 주민들은 집에 다급하게 영국 국기를 계양했다. '영국인이 사는 집'이라는 팻말도 걸었다. 주변에서 여러 집과 가게가 반이민 폭도에게 공격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 사건이 하나 있었다.

올해 6월 9일, 루마니아계 10대 소년 둘이 10대 소녀 하나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루마니아 소년은 영어가 서툴러서 통역사를 통해 혐의를 부인했다. '이민자가 어린 소녀를 공격했다.' 북아일랜드 사람들은 이 부분에 분노했고, 9일부터 반이민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곧 폭동이 되었다. 6월 10일부터는 복면을 쓴 남성 수백 명이 집을 불태우고 경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당국은 폭동을 증오 범죄로 규정하고 대응했지만, 며칠째 공포스러운 무질서가 계속되고 있다. 루마니아인은 기독교 문화권에 속하는 백인이다. 그럼에도 북아일랜드에서는 낯선 이방인에 불과했다.

대체 북아일랜드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폭동을 걱정하게 되었을까.

사실, 서유럽 사람은 꽤 오랫동안 동유럽 사람을 무시하고 차별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에 망명한 폴란드인은 나치에 함께 맞서 싸웠음에도 환영받지 못했다. 심지어 당시 나치는 폴란드인과 그 주변 슬라브계 사람들을 아예 ‘아시아인’이라고 불렀다. 같은 유럽 문화권으로 여기지도 않은 것이다. 영국과 독일 등에서, 동유럽인이란 일자리를 빼앗으러 오는 이방인이었다.

동유럽인 혐오는 분명 폭동의 원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체 왜 혐오가 확산해서 폭동으로 이어지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짜뉴스라는 편리한 적을 지목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가짜뉴스 역시 설명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다. 루마니아계 소년이 성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고, 사람은 부족주의적이어서 집단 구성원의 범죄보다 외부인의 범죄를 더 큰 위협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민자에 대한 가짜뉴스는 장작일 뿐, 불은 이미 다른 곳에서 지펴지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번 폭동의 핵심 원인, 가짜뉴스라는 장작을 받아들일 불을 지피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동화주의 없는 이민 정책인 듯하다.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던 루마니아 소년들은 영어를 못해서 통역사가 필요했다. 이는 곧 영국 정부가 이민자를 영국인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다.

사람은 너무 이질적인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좌파적인 사람도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예측 가능한 상대를 편하고 안전하게 여기는데, 너무 이질적인 문화권에서 온 사람, 언어가 통하지 않고 관습이 다른 사람의 행동은 예측하기 어렵다. 사람의 뇌에게 예측 불가능함이란 그 자체로 위협이다. 그래서 여러 민족과 종파가 엮인 시리아 내전이 그렇게 잔혹하고 오래 걸렸던 것이다.

한 사회는 이질적인 사람을 무한정 받아들일 수 없다. 견딜 수 있는 차이의 한계선이 있는 셈이다. 그 한계선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곧바로 알기 어렵다. 그 사회의 문화나 역사, 경제상황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만약 정부가 그 한계선을 고려하지 않고 이민자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

흔히 이민자와 범죄를 연결지으면 무조건 혐오로 치부하지만, 그렇게 논의를 원천 차단하면 결국 정부의 이민정책만 믿고 들어온 이민자가 억울한 폭력을 겪을 뿐이다.

한 사회가 정서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많은 이민자가 들어오면, 그 사회는 적응하지 못한 이민자의 범죄 뿐만 아니라 그런 이민자를 폭력으로 몰아내려는 사람들의 범죄까지 겪게 된다. 북아일랜드가 보여준 것처럼.

혐오는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은 더더욱 혐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어떤 집단을 일반화해서 혐오하는 절차는 각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뇌에 각인된, 원시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으면서 자기 방어 수단만 내려놓으라고 윽박지른다면, 사람들의 불안감은 더 강렬해질 뿐이다.

물론 이민자에 의한 범죄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지 모르지만, 불안감은 통계적인 감정이 아니다.

다문화주의를 채택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갈등, 폭력, 극우화를 겪고 있다. 유일한 예외가 캐나다인데, 캐나다조차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이민자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자라고 있는 상황이다.

혐오를 완전히 제거하려면, 사람의 뇌를 뜯어고쳐야 한다. 간혹 마음챙김이나 명상 기법이 혐오를 진정시킨다는 연구도 있지만, 정부가 전국민에게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심리치료 기법을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마음챙김이 사회갈등과 테러 같은 진짜 위협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혐오 정서를 우회하는 방법을 골라야 한다. 이민자를 가능한 한 자국민처럼 바꾸지 않으면, 다시 말해 덴마크처럼 엄격한 동화주의 절차를 마련하지 않으면, 결국 이민자가 억울한 일을 겪게 될 뿐이다. 책임질 수 없다면, 애초에 데려오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근거 없는 낙관만 믿고 다문화주의 정책을 채택한 정부야말로 가장 질 나쁜 이민 브로커다.

“우리에게는 국민 정체성이 모두에게 열려 있고 공유되어 있다는 분명한 감각이 필요하다. (...) 우리에게는 수동적인 관용의 축소와 보다 적극적이고 강인한 자유주의가 필요하다.”
-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 2011년 뮌헨 안보 회의에서


NBC NEWS, Northern Ireland town is engulfed in racist riots for a third day, 202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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