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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자라나는 절망 (3)

삶을 불태우는 학구열

by 이완

1994년 11월, 경남 마산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 최 씨가 여중생 진 모 양의 시신을 발견했다. 진 양은 화단 소나무 아래에 쓰러져 있었다. 소나무 가지가 여러 곳 부러졌고, 진 양의 손등에는 긁힌 상처가 많았다. 경찰은 아파트 옥상에서 진주람 양의 가방과 함께 메모를 하나 발견했다.


“공부는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안 올라간다. 학교 공부가 싫다.”

- 진 양의 메모13)


공부는 괴로운 일이다. 모든 공부는 대응법을 모르는 문제를 마주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를 마주하면, 사람의 뇌는 순식간에 문제가 초래할 결과를 예상한다. 만약 나쁜 결과가 예상된다면, 그 나쁜 결과를 막기 위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지 검토한다. 대응법이 있다고 여기면, 사람은 문제를 마주해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대응법이 없다고 여기면, 그 때부터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14)


대체로 공부는 나쁜 결과와 연결되어 있다. 성적이 나쁘면 선생님의 체벌이든 미래의 가난이든 어떤 불이익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공부를 잘하는 법은 쉽게 얻을 수 없다. 온갖 학습법과 자기계발서 사이에서 무엇을 의지해야 할지, 학생과 학부모가 직접 판단하기란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학교와 학원이 학생에게 알맞는 공부법이나 문제 푸는 원리를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공부는 굉장한 스트레스를 초래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청소년이 그런 스트레스를 강요받는다는 것이다. 어떤 음식을 먹었는데 너무 맛이 없거나 지나치게 매우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만 먹어야 한다. 그러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공부는 청소년이 스스로 그만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스트레스가 신체 통증으로 이어질 때까지 심해져도, 적지 않은 청소년이 학교와 학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스스로 멈출 수 없는 고통은 다른 말로 고문이다.


공부라는 고문이 지속되다 보면 자살의 두 조건이 충족될 수 있다. 하나, 오랜시간 정서적으로 고통받았으니 자해에 대한 두려움에 익숙해질 수 있다. 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나 자신 떄문에 부모님이 실망하고 괴로워한다는 죄스러움이 자살 생각을 일으킨다. 여기서 주변에 의지할 수 있는 친구나 어른이 있다면, 사람은 자살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더라도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만약 의지할 사람이 없다면, 자살의 세번째 조건이 충족되어 자살시도가 일어난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 1986년 1월에 자살한 한 여중생의 유서15)


물론 실제로 자살하는 청소년은 극소수다. 1980년대부터 10대 청소년이 매년 300명 씩 자살하고 있지만, 전체 10대 인구에 비하면 10만 명 당 4명 정도다. 하지만 앞 장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살해서 죽는 사람은 거대한 빙산의 끄트머리에 불과하다. 자살을 시도했지만 죽지 못한 사람과 자살 생각에 괴로워 하는 사람 수는 대체로 자살자의 몇 십 배에 달한다. 한 사람의 자살은 수 많은 사람이 자살 문제를 겪고 있다는 증거다.


분명 어릴 때 진학과 취업을 준비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부모가 자녀를 평생 먹여살릴 수는 없으니,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일해서 자신을 부양해야 한다. 기왕이면 많은 소득을 안정적으로 주는 일자리를 얻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자리는 희소하니 어릴 때부터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누군가는 경쟁 없는 세상을 꿈꾸겠지만, 그런 세상은 비효율적이고 불공정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교육 경쟁은 잘못 설계되어 있다. 이름 있는 대학과 기업은 한정되어 있는데, 수십만 학생이 그 한정된 자리만 바라보며 달려든다. 이런 병목현상은 경쟁을 쓸데 없이 어렵게 만든다.


예를 들어 9급 일반행정 공무원은 많은 기술이 필요한 일자리가 아니다. 대학도 안 나오고 영어도 할 줄 몰라도 일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래서 초봉도 최저임금 수준이고 부서에 따라서는 안정성 외에 아무런 장점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9급 공무원은 어지간한 대기업 정규직만큼이나 들어가기 힘든 자리다. 경쟁률이 100 : 1, 200 : 1로 치솟는 바람에, 9급 공무원 시험은 사람을 걸러내기 위한 시험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렇게 어려워진 시험을 통과해도 결과물은 똑같이 9급 공무원이다. 그러니 막상 시험에 합격해도 들어간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이 별 것 없다는 생각이 들 수 있고, 실제로 신입 공무원 상당수가 근무한지 1년도 안 되어서 퇴직한다.16) 과도한 경쟁 탓에 시험 난이도에 거품이 낀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 전반이 이런 상황이다. 수십만 수험생 중에서 원하는 자리를 고를 수 있는 사람은 결국 1등급, 상위 4% 뿐이다. 모두가 똑같은 노력을 들이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학부모가 학생을 다그쳐도, 학생 태반은 흔한 대학교에 들어가서 흔한 중소기업에 취업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결과와 상관 없이 공부에 들어가는 시간과 돈은 끝 없이 늘어나고 있다.


사실상 한국 교육은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의 금융사기에 가까운 셈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우리나라의 교육열을 칭찬한 적이 있다. 미국 부모들이 점점 교육에 무관심해지고 있어서, 우리나라를 모범 사례로 소개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을 뒤따르면 미국은 분명 후회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어린 학생들을 석탄 대신 태우며 에너지를 얻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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