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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자라나는 절망 (2)

정말 죽도록 맞던 시기

by 이완

2007년에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반 친구 몇 명이 영어시간에 떠들다가 선생님 앞으로 불려갔다. 그 중 하나가 자신이 먼저 말을 걸었다며 혼자 매를 맞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영어 선생님은 오른 손바닥으로 있는 힘껏 그 친구의 뺨을 쳤다. 건방지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영어 선생님은 그 친구를 복도로 데려가서 한참 훈계했다.


다음날 그 친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교에 나왔고, 영어 선생님도 별 탈 없이 수업을 계속했다.


그 친구가 겪은 일은 가벼운 수준이었다. 같은 해 7월, 부산에서는 한문 교사가 무분별한 체벌로 중학생 이 군을 죽였다. 한문 교사는 시험 성적이 낮은 학생들에게 오리걸음을 시켰는데, 마침 감기 기운이 있던 이 군이 오리걸음 중에 쓰러져서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5) 한문 교사는 이 군의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며 사과했지만,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올 리 없었다.


지금 20대와 30대 청년은 항상 폭력에 노출되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1998년 9월부터 1999년 8월까지 학교 내 체벌 실태를 조사한 적 있다.6) 그 시기는 지금 30대 초반이 초등학교에, 30대 후반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다. 조사 결과, 학생 34%는 교사에게 손이나 주먹으로 맞아 봤고, 55%는 몽둥이로 맞아 본 것으로 드러났다. 교사에게 전혀 맞아 본 적 없는 학생은 고작 4%에 불과했다.


수치는 심각했지만, 이후 정부기관 차원에서 체벌 실태를 조사하는 일은 한동안 없었다. 많은 사람이 체벌을 '문제'로 여기지 않은 시기였으니까. 심지어 2000년 1월에는 헌법재판소조차 교육을 위한 체벌이 정당하다는 편결을 내렸다.7)


분위기가 바뀐 것은 휴대폰이 보급된 뒤였다. 휴대폰 덕에 학부모는 교사가 아이들을 엎드리게 하고 온힘을 다해 몽둥이를 휘두르는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접할 수 있었다. 곧이어 국제사회도 한국의 체벌 실태에 걱정 어린 관심을 기울였다. 교사의 잔혹함이 학교 밖으로 유출되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기존의 체벌이 교육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윤리적이지도 않다는 인식이 퍼졌다.


인식 변화는 제도 변화로 이어졌다. 2010년 5월, 경기도가 처음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했다. 조례에는 학교 내 모든 체벌을 금지하는 짧은 조항이 포함되었다. 이후 다른 지방이 비슷한 내용의 조례를 제정했다. 일부 교사들이 격렬히 반발하고, 교육부가 조례의 효력을 멈추기 위해 소송까지 걸었지만, 법원이 조례의 정당성을 인정해 주면서 학생의 신체가 비로소 법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학교에서 체벌은 금지된다."

-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 제6조(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제2항


하지만 고작 조례 하나가 수십 년 간 이어진 악습을 곧바로 털어낼 수는 없었다. 2016년 전라북도 완주군에서는 한 고등학교 교사가 전선보호 덮개로 학생의 뺨을 때리고 벌금형을 받았다. 때린 이유는 수업 중에 눈이 마주쳤다는 것이었다.8) 2013년 충청북도 청주시의 한 중학교에서는 검도부 코치가 학생을 폭행해서 죽였다. 코치는 학생의 손목을 묶고 죽도로 300대 가까이 때렸다. 학부모에게 생활지도를 부탁받았다는 것이 이유였다.9)


통계에서도 악습의 잔재가 드러났다. 2013년에 인권친화적 학교 너머 운동본부가 체벌 실태를 조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고등학생 중에서 체벌을 겪거나 목격하지 않은 사람은 절반에 불과했다.10) 나머지 절반은 어떤 식으로든 체벌을 경험했다. 2011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에서도 중고등학생 절반이 1년에 한 두 번 이상 체벌을 받아 본 것으로 드러났고, 2014년 같은 기관의 조사에서도 중학생의 29%가 체벌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11)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 안 체벌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법이 감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공교육이었다. 사교육은 법의 굴레 밖에 있었고, 좋은 대학을 명분으로 더 당당하게 학생을 체벌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은 학교보다 학원에서 더 자주 체벌을 겪었다. 체벌 강도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학생과 학부모가 이런 체벌을 불합리한 일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더 자주, 더 강하게 체벌하는 학원이 좋은 곳이라는 인식마저 있었다.


"우리 학원에서는요, 숙제를 안 해 오면 2 ~ 3대, 질문에 대답을 못하면 1 ~ 2대, 떠들거나 졸면 3 ~ 4대 정도를 때려요. 선생님도 그렇게 하세요."

- 강남의 어느 학원 강사12)


체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사 또는 강사와 학생은 절대 대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교육자가 때리기로 마음 먹으면 학생은 그저 맞아야 했다. 그러고도 다음날 태연하게 학교와 학원에 출석해야 했다. 우리나라 청년은 어릴 때부터 피할 수 없는 신체 고통에 원하지 않게 노출되어 온 셈이다.


그렇다면 체벌만 피하면 괜찮았을까. 그렇지도 않았다. 정 군 사건이 보여준 것처럼, 학생은 통제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항상 갇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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