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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줄이면 잘 살게 될까?

전혀

by 이완

많은 사람이 믿기를, 과도한 세금이 우리나라 경제를 망치고 있다. 우파 경제학자 뿐만 아니라, 우파 인플루언서도 세금 혐오를 퍼뜨리고 있다. 물론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라서 세금 혐오를 이론적으로 반박하기 어렵다. 다만 애덤 스미스부터 폴 새뮤얼슨, 폴 크루그먼까지, 의외로 많은 경제학자가 세금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실제로, 1950년대와 6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개인과 기업에 부과되는 소득세가 지금보다 훨씬 높았고, 지금도 세율과 경제성장률이 반드시 반비례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이집트와 아프가니스탄은 소득세가 매우 낮지만, 그럼에도 두 나라는 높은 가처분소득과 풍족한 사회기반 시설, 뛰어난 혁신성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부자들도 두 나라로 이민가지 않는다.


물론 모나코와 아일랜드는 낮은 세금으로 부자들을 끌어들이며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그러나 두 나라는 유럽, 미국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을 누리고 있을 뿐, 결코 실속 있는 경제 질서를 만들었다고 할 수 없다. 일단 모나코는 그리말디 공작가의 영지이자 외국인 부자들의 여행지 같은 곳이라서, IMF 정부지출 통계 등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잔뜩 부풀려진 GDP와 달리, 아일랜드의 실제개인소비(AIC) 수준은 이웃 영국이나 북유럽에 비해 낮고, 이탈리아와 비슷하다. 특히 해외 부자들이 집값에 거품을 잔뜩 끼워넣은 바람에 내국인이 주택 위기를 겪고 있다. 아일랜드가 자랑하는 GDP도 글로벌 대기업 본사가 아일랜드에서 본국으로 송금하는 과정까지 포함한, 거품 가득한 수치다. 아일랜드와 모나코는 따라할 만한 사례가 아닌 셈이다.


우리나라도 결코 세금이 높은 편이 아니다. 최고 소득세율은 45%이긴 하지만, 2022년 통합소득 자료(국세 기준)로 계산했을 때 상위 0.1%의 실효세율은 35%, 상위 1%의 실효세율은 20% 정도다. 상위 7% 이하는 10%도 부담하지 않으며, 상위 30%는 3%를 부담할 뿐이다. OECD 통계에서도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GDP 대비 소득세수가 적다. 아일랜드도 우리나라보다 소득세를 많이 걷는다. 총임금 대비 실효세율을 봐도 마찬가지다.


상속세의 경우에도, 우리나라의 명목 최고세율은 일본보다 낮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금융 자본이득에 꽤 관대한 편이다. 따라서 부자가 우리나라를 떠난다면, 세금 때문이 아니라 불공정한 법 질서와 불합리한 규제, 먹고 사는 데 쓸모 없는 교육체계 같은 요소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다. 차라리 이 지점을 지적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 조세제도는 매우 복잡하다. 상하위 계층 양쪽의 세금 혐오를 이리저리 회피하느라, 과표구간이 많고 취득세 같은 거래세의 비중이 높다. 국민이 세금을 쉽게 계산할 수 있고, 외국 투자자가 어려움 없이 한국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세법을 빠르게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단순히 세율이 너무 높아서 문제라는 소리에는 근거가 없다. 이는 정부와 이웃이 미워서 내 것을 나눠주기 싫다는 볼멘소리에 가깝다. 세금 혐오는 사회적 신뢰 붕괴가 초래한 증상이지, 합리적인 분석의 결과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세율을 문제 삼는 인플루언서는 믿고 걸러도 좋아 보인다. 세금 혐오는 또 다른 포퓰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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