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시간 9월 10일, 유타 밸리 대학교 총격사건
미국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났다. 서른 한 살의 기독교 우파 인플루언서, 찰리 커크가 목에 총을 맞았고 곧 병원에서 사망했다.
현지 시간 9월 10일 오후 12시 유타 밸리 대학교에서, 찰리 커크는 3천 명의 청중과 함께 공개 토론 행사를 진행했다. 한 참가자가 찰리 커크에게 트렌스젠더 범죄자가 몇이나 되는지 질문하자, 찰리 커크는 ‘너무 많다’고 대답하며 트렌스젠더에 대한 기독교 우파의 편견을 드러냈다. 그렇게 행사가 20분 정도 진행되었을 때, 총성이 울리며 찰리 커크가 쓰러졌다.
찰리 커크는 기독교 내셔널리즘을 주장하고 트럼프를 적극 지지하는 우파 청년이었다. 2020년까지는 종교를 앞세우지 않았지만, 코로나 펜데믹 이후부터는 정교분리를 끝내고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되돌릴 것을 주장했다. 기독교 우파 답게, 커크는 동성혼에 반대했고, ‘성별은 오직 두 개 뿐’이라고 명확하게 선언했다.
그런 커크가 쓰러지자,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주요 우파 인사들이 커크를 애도하며 테러를 규탄했다. 범인이 누구이고, 왜 커크를 쐈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우파 진영은 이미 급진 좌파의 정치 테러로 여기고 있다. 만에 하나 범인이 좌파 성향이거나 좌파 운동에 참여했다고 밝혀진다면, 미국인의 심리적 내전은 진짜 내전이 될지도 모른다.
이미 2024년 대선 때 당시 트럼프 후보가 머리에 총을 맞을 뻔했고, 2025년에는 미네소타 민주농민노동당 소속의 주 하원의장, 멜리사 호트먼이 경찰로 위장한 테러리스트의 총격에 사망했다. 미국 정치가 사실과 통계, 논리로 싸우던 시절은 끝났다. 아니,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범인이 좌파인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미국 좌파는 피를 부르는 정치 양극화를 초래한 공범이다. 우선 미국 좌파는 여러번 권력을 잡고도 계급 간, 지역 간 격차 문제에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 석탄산업으로 번성하던 도시가 몰락하거나 말거나, 미국 좌파는 캘리포니아 같은 부유한 지역을 장악하고는 자신들만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유토피아를 만들려 했다.
특히 마땅한 기술도 자본도 없는 난민과 이민자를 받아놓고, 그들을 미국인 노동자로 훈련시킬 게획 따위는 마련하지 않았다. 그 탓에 가난한 외지인들이 부유한 동네의 구석이나 가난한 지역에 모여들었다. 서로가 낯선 이주민과 원주민은 서로에게 범죄를 저질렀다.
2024년 2월 22일 조지아 주에서는 베네수엘라 출신 불법 이민자가 미국인 여대생 레이큰 라일리를 무참히 살해했고, 2025년 8월 22일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미국 흑인이 우크라이나 난민 여성을 아무 이유 없이 살해했다.
보다 질서 있게 이민자를 받았더라면, 인권을 남용하며 무분별하게 관대하지 않았더라면, 여러 사람이 죽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 좌파는 그런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혐오이자 차별이라며 입을 막을 뿐이었다. 우파가 가짜 뉴스와 사이비 과학으로 사람들을 홀렸다면, 좌파는 사회정의의 이름으로 침묵을 강요했다.
미국의 치안은 당장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음에도, 미국 좌파는 정치적 올바름의 이름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현지인도 일자리와 살 곳을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술도 자본도 입국 허가도 없는 낯선 사람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한 것은 결코 애국적인 일도 아니었고 정의로운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좌파적인 일도 아니었다.
좌파가 우파보다 평등을 아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등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는 않았다. 과거의 현명한 좌파에게 평등이란 보다 끈끈한 사회 또는 보다 강한 사회를 위한 기반이었다. 하지만 미국 좌파는 조국과 공정성을 희생시켜서 목적 잃은 평등주의를 달성하려 했다.
미국 좌파가 집권하는 동안, 너무 많은 사람이 정치적으로 배제되었다. 미국 좌파는 백인과 남성 같은 강자는 배제될 수 없다는 유치한 이론을 내세웠지만, 이는 좌파가 훨씬 전부터 주목한 차별의 주 원인, 즉 계급에 따른 소득과 권력 차이를 외면하는 이야기였다. 백인이고 남성이더라도 가난한 지역에서는 생존 위협을 느끼고 살았음에도, 미국 좌파에게는 오랫동안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과연 미국의 저소득 노동자가 마땅한 이유 없이 좌파를 등진 걸까. 피를 부르는 무질서에 미국 좌파는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찰리 커크가 평등과 성소수자를 혐오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많은 사람이 찰리 커크에게 환호할 만한 조건이 만들어진 데는, 그리고 논리가 아니라 총알이 날아다니게 된 데는 좌파의 기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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