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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Jan 31. 2023

가벼운 에세이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서툽니다.

나는 입보다 손이 편하다. 누군가와 대면한 채 이야기할 때에는 정신의 베터리 잔량이 순식간에 줄어든다. 누구와 이야기하든, 되돌려 줄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말을 더듬을 때가 많다. 정신 없이 대응하고 나면 꼭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하며 후회하는 것은 기본이다. 일이 이렇다보니, 입을 쓰는 일은 항상 불편하다. 차라리 손으로 펜을 쥘 때 더 마음이 편하다. 차분히 생각할 수 있고, 아니다 싶으면 지울 수 있으니까.

이런 내향인 기질을 바꿔보기 위해 노력했던 적도 있다. 중,고등학생 때에는 청소년 봉사 단체에 꾸준히 출석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상대를 사로잡는 화술을 알려준다는 책을 한 번에 다섯 권 씩 사서 읽었다. 이렇게 쌓은 경험과 지식을 다양한 사람에게 실험해 보았다.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어찌어찌 타인을 대응하는 법에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베터리 잔량이 순식간에 줄어드는 느낌을 극복할 수는 없었다.

알고보니, 한 번 자리잡은 기질은 바뀌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책으로 접한 진지한 과학자 중에 기질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고 단정 짓는 사람은 없었다. 순전히 자기 힘으로 신장을 늘릴 수 없는 것처럼, 타고난 기질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나는 반팔에 반바지만 입고 북극해를 헤엄치려 한 셈이다. 그 옛날 서진의 명장 양호가 말한 것처럼, 하늘 아래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열의 일고여덟이다(천하불여의 환십가칠팔).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살아 있는 사람이 방치해도 되는 문제란 없다. 열의 일고여덟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부분이라면, 남은 두셋은 내 마음대로 되는 부분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 부분을 찾아서 공략해야 한다. 용량이 작은 베터리를 다른 것으로 교체할 수는 없겠지만, 남은 베터리를 아껴쓰고 틈 날 때마다 충전하는 법을 연습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나는 삶에 적응하고 싶다.

"주여,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 라인홀트 니버, 평온을 비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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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에세이를 쓰는 법을 연습해 보고 있는데, 역시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좋은 글의 최소 기준만으로는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글을 쓰기에 부족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쓰기에 완성은 없는 걸까요? 단지 제가 책을 편향적으로 읽었을 뿐인 걸까요? 오늘도 해가 뜰 때까지 고민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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