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고소득 남성과 저소득 여성이 많이 결혼하는 편이다. 2023년 한국은행의 어느 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그렇다.
이런 '소득 상향혼'이 소득을 상당히 재분배하고 있어서, 만약 덴마크처럼 소득 동질혼이 늘어나면 우리나라 소득 격차가 최대 15% 정도 악화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까지 국가가 제공하는 공적 복지보다 가족끼리 나누는 사적인 복지가 더 많았다. 지금은 역전되었지만, 그래도 복지제도가 잘 갖춰졌다고 보기 어렵다. 그걸 결혼이 벌충하고 있는 셈이다.
소득 상향혼은 20, 30대 청년의 소득별 결혼 비율에서도 드러난다. 소득 하위 10%에 속하는 청년 여성의 경우, 열 명 중 네 명이 결혼했다. 그런데 하위 10%에 속하는 청년 남성의 경우, 열 명 중 한 명도 결혼하지 못했다. 반면 상위 10%에 속하는 청년 남성의 경우, 열 명 중 여덟 명 이상이 결혼했다. 저소득 남성은 결혼 경쟁에서 매우 불리하다.
결혼이 중요하지 않았다면 문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앞세대는 아직까지 자녀에게 결혼을 종용하고 있고, 그런 압박이 없더라도 사람은 짝을 찾아서 애착 관계든 경제 공동체든 자신의 무리를 이루고 싶어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유튜브에서 단란한 가족의 영상을 보며 부럽다고 생각해 본 독신이 적지 않을 것이다. 소수 친밀한 사람과 깊이 교류하고 싶은 욕구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면 저소득 남성은 왜 결혼 시장에서 배제되었을까. 여러 남성이 여성의 편의주의를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이는 내로남불이다. 사람은 누구나 비용과 노력이 적게 들고 보상을 얻을 확률이 높은 방법을 선호한다. 보상이 뚜렷하지 않은데 굳이 큰 리스크를 감당하는 사람은 비합리적이다. 편의주의는 뇌가 자신을 보호하고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선택한 생존 전략이다. 남자라고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녀 간 소득 격차가 크다. 남자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인식도 아직 남아 있다. 반면 소득을 올릴 기회는 균등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여성 입장에서는 스스로 많은 비용을 들여서 고소득자가 되기를 바라느니, 차라리 자신을 꾸며서 고소득 남성을 찾는 편이 확률 높은 투자다. 물론 모두가 정확하게 확률을 계산하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투자자들도 수치화된 확률이 아니라 직감적인 확률에 의존할 때가 많다. 이는 케인즈도 지적한 현상이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누구에게나 있는 편의주의 심리가 남녀 간 소득 격차, 기회 불균등, 전통적인 남녀 역할관 등과 만나서 소득 상향혼 현상을 만든 듯하다. 만약 여성이 긴 시간 동안 부유했다면, 지금쯤 남자가 고소득 여성을 붙잡기 위해 옷과 화장품 매출을 올려주고 있을지 모른다. 오래전부터 고소득 여성을 겨냥한 호스트바도 있었으니, 남녀 역전 세계가 불가능하지는 않아 보인다.
실제로 로버트 새폴스키 교수에 따르면, '테스토스테론'은 흔히 말하는 남자다움을 자극하는 호르몬이 아니라, 지위 상승에 도움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게 하는 호르몬이다. 지위 상승은 생물학적 욕구에 가깝지만, 그 수단은 문화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요소인 셈이다.
물론 소득 수준 따지지 않고 만나는 커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은 확률의 학문이다. 누군가의 경험담은 비슷한 조건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패턴을 무시할 근거가 되지 않는다. 타이레놀이 통하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타이레놀이 효과 없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나는 안 그런데. 내 주변 사람은 안 그런데.' 같은 말은 과학의 기본도 모른다는 자백과 같다. 동질혼 부부가 꽤 많다고 해서, 상향혼 경향이 관찰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는 않는다.
일부의 경험담이지만, 결혼정보회사가 고소득, 고학력 여성을 기피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따라서 소득 상향혼 현상은 여자들의 신데렐라 꿈만 욕할 일이 아니다. 신데렐라 노선을 따르는 것이 더 편하고 안전한 상황을 우리나라가 만들어 놓았다. 그 핵심에는 남녀 간 격차와 사회 전반의 기회 불균등이 있다.
참고자료
1. 박용민 등, 소득동질혼과 가구구조가 가구소득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 국제비교를 중심으로, 한국은행, BOK 경제연구 제2023-2호.
2. 손병돈, 한국의 비공식 복지, 사회평론아카데미, 2021.
3. 김유선, 저출산과 청년 일자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ISSUE PAPER 제8호, 2016
4. Roy F. Baumeister etc, The Need to Belong: Desire for Interpersonal Attachments as a Fundamental Human Motivation, the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Psychological Bulletin, Vol. 117, No. 3, 1995.
5. 로버트 M. 새폴스키, 행동 [전자도서], 김영남 역, 문학동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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