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는 정부가 불안하다면

정부부채는 신용대출이 아니다

by 이완

적자 예산을 꾸릴 때, 우리나라 정부는 국채를 팔아서 필요한 돈을 구한다. 예를 들어 3년 만기 국채는 정부가 3년 동안 이자를 지급하다가 원금을 돌려주는 채권인데, 이 국채를 누군가가 사면 정부는 그만큼 당장 쓸 수 있는 돈을 얻는다. 보통 국채는 안전자산으로 통하기 때문에, 경제 전반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는 한 정부가 국채를 팔지 못하는 상황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국채는 결국 매입한 사람에게 돌려줘야 하는 빚이지만, 그 부담이 반드시 미래세대에게 전가되지는 않는다. 정부는 세금으로 국채를 갚는 것이 아니라 새 국채를 발행해서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채 100억 원을 돌려줄 때가 되면 또 100억 원을 발행하는 식이다. 이렇게 국채로 국채를 상환하는 것을 '롤오버(차환)'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이 롤오버를 통해 적자 재정을 꾸린다.


만약 정부가 기존 세금 수입만으로 국채 이자를 지급할 수 있다면, 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이라도 벌여서 정부부채를 갚아야 하는 상황은 오지 않는다. 만약 새 국채의 이자율이 옛 국채보다 낮다면, 오히려 정부는 더 많은 국채를 발행하면서도 이자로 나가는 지출을 아낄 수 있다. 물가가 치솟지 않는 상황에서 장기 국채이자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다면, 정부는 기존보다 더 많은 국채를 큰 문제 없이 감당할 수 있다.


물론 새로 발행하는 속도를 조절해야 하지만, 국채를 사 줄 사람만 있다면 적자 자체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국채는 차관이 아니다. 이는 현대화폐이론이 아니라 주류경제학 이론이다.


일반 기업도 자기 자본의 100%, 200% 넘는 부채를 잘 감당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국채로 국채를 갚는 것처럼, 단기 자금 융통을 위해 빚을 졌다가 금방 갚는 식으로 큰 부채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의 부채가 자본의 200%를 넘는다고 해서 무조건 위험 신호로 여기지 않는다. 어지간한 은행의 부채비율은 100%를 훌쩍 넘는다.


우리나라의 공공채무(중앙 + 지방정부 등 공공부문)는 1,300조 원 정도다. 중앙정부가 가진 국유재산은 그보다 살짝 많은 수준이다. 게다가 지방정부가 가진 공유재산도 1,000조 원 정도다. 정부는 기업이 아니지만, 기업처럼 부채비율을 계산하면 우리나라 정부의 자기자본 대비 부채 규모는 50 - 60% 정도다. 그정도면 기업들 사이이서 매우 건전하고 우량한 편에 속한다.


물론 국유, 공유재산 상당수는 곧바로 현금화하기 어려운 부동산이다. 그러나 여기에 각종 공적 기금이 소유한 수천조 금융자산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공적 기금이 소유한 자산도 따지고 보면 공공의 재산이라고 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독립적인 법인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생각보다 가진 것이 많다.


그리스처럼 경제와 신뢰가 완전히 무너져서 아무도 국채를 사주지 않는 위기 상황에 처하지 않는 한, 지금 수준의 정부 부채는 다소 강하게 표현해서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나라가 비기축통화국이라고 해도, 누군가가 국채를 사주고 세금으로 그 이자를 감당할 수 있으면 아무 문제 없다. 국제기구도 우리나라 정부에 속도를 조절하라고 했지, 적자를 절대 꾸리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구한 자본, 정부가 감당한 위험, 정부가 구상한 계획으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곳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성장하려면 결국 정부가 큰 위험을 짊어지고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중국도, 미국도, 일본도 그렇게 하고 있는데, 우리만 기업의 자본력에 의존하면 경쟁에서 밀릴지도 모른다. 재정 위기를 과하게 걱정하다가 정부부채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면 그 걱정을 직접 실현하게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정부부채를 마치 소돔과 고모라, 사탄의 자식처럼 매도하는 시대는 끝났다. 유행에 민감한 나라 답게, 경제학도 최신 유행을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 생산적인 곳에 지출한다면, 정부부채는 오히려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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