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층이 미움받는 이유

우리나라는 격차를 기분 좋게 받아들일 만큼 공정한 곳이 아니다.

by 이완

왜 많은 사람이 고소득층, 중산층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을까. 그저 방구석 패배자들이 잘 나가는 사람을 보고 배 아파 하기 때문일까. 그런 속 좁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원인이 있다.

우리나라는 공정하게, 생산적으로 경쟁하는 곳이 아니다. 사교육비와 응시료처럼 경쟁에 참가하기 위한 비용이 치솟는데, 소득은 매우 불평등하다. 그 불평등도 각자의 지능과 노력 차이에 비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엄연히 상속과 지대의 지분이 크기 때문이다.

상속과 지대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많이 가진 자에 대한 질투가 아니다. 극단적 시장만능주의자를 제외하면, 수많은 정치사상가와 경제학자가 상속과 지대의 정당성에 대해 수백년 전부터, 어쩌면 고대부터 논의해 왔다. 윈스턴 처칠 같은 보수주의자도 토지 지대를 환수하기 위한 양도세를 적극 추진했다.

사회적 평화와 번영을 유지하려면, '무엇이 공정한 몫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의는 사회의 기초다. 이를 '가진 자에 대한 질투'라고 비난한다면, 윈스턴 처칠 경과 존 스튜어트 밀 의원은 무슨 반응을 보일까.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적 지대를 누릴 자격이 없으며, 그것을 몰수하는 일을 정의는 방해하지 않는다."
- 토마스 멀리건, 미국 능력주의 철학자
Thomas Mulligan, Do People Deserve their Economic Rents?, Erasmus Journal for Philosophy and Economics, Volume 11 Issue 2, 2018.

물론 고소득층의 미성년 자녀를 향한 무분별한 악플들 역시 저런 교양과 무관할 것이다. 과잉 경쟁과 기회 불균등은 상대적 박탈감, 빈곤감을 초래한다. 이는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을 자극하고 새로운 문화를 배척하게 할 뿐만 아니라, 기득권과 고소득층에 대한 분노도 자극한다.

실제로 그레고르 슈트라서 등 독일 나치당원 상당수가 유대인과 폴란드인 뿐만 아니라 부유한 자본가와 프로이센 귀족 장교들도 혐오했다. 미국의 MAGA주의자들도 비기독교, 비백인 뿐만 아니라 일론 머스크 같은 글로벌 기업인을 경계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유럽과 미국의 현명한 부유층은 계급 갈등을 예방하고 사회통합을 유지하는 데 항상 신경써 왔다. 계급 차이가 도드라지고 사회질서에 대한 충성심이 약해지면, 재산권을 지키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재산권은 하늘이 지켜주지 않는다. 사회가 합의하고 사람들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재산권이 창설되고 유지된다. 누군가가 더 많은 몫을 정당하게 갖고 있다는 점을 다수에게 납득시키지 못하면, 고소득층은 재산을 넘어 생명까지 위협받게 된다. 2024년 12월 미국의 도심 한복판에서 유나이티드헬스케어의 CEO가 저격당한 것처럼.

'자본주의는 원래 그런 거다'라는 훈계는 경제학 면에서도 그닥 근거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차별주의' 한 단어로 논쟁을 끝내려는 현대 좌파와 다를 바 없는 태도이기도 하다. 벤자민 디즈레일리가 이야기했듯, 오두막이 행복하지 않으면 궁전도 안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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