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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Feb 01. 2023

Ave, 안철수

내향인의 정치 성공담을 기대하며

안철수 박사는 애증의 대상입니다. 유튜브에 안철수 박사가 출연하는 영상이 올라 올 때마다, 저는 터치하지 않고 바로 스크롤을 내렸습니다. 뜨뜻미지근하고 모호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안철수 박사를 옹호하는 글을 여러 번 올렸습니다. 안철수 박사가 이를 대체할 잇몸이 되어 주기를 내심 기대했습니다.


안철수 박사는 내향인인 듯합니다. 얼굴 근육에 억지로 힘을 주는 듯한 미소, 느리고 툭툭 끊기는 말투, 토론회에서 강하게 이야기하는 상대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저 사람은 동지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안철수 박사가 내향인이라고 가정하면, 지적인 능력과 비례하지 않는 토론 실력, 언론 대응 실력도 나름 설명됩니다. 내 방에서는 누구보다 머리가 잘 움직이지만, 남들 앞에서는 자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내향인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안철수 박사는 진보했습니다. 여전히 유승민 의원처럼 토론회에서 상대를 잘 공격하거나 박형준 시장처럼 여러 프로그램에 자주 초청되어 활약하지는 않지만, 붉은 넥타이를 맨 안철수는 녹색 띠를 두른 안철수보다 말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말투부터 표현 방식까지 새로 연습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보면 진심이 느껴집니다. 마음 속에 어떤 목표를 강하게 품고 있지 않으면, 자신의 약한 모습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이유도 없습니다. 연인 사이에 서로 관계가 틀어지려 할 때, 진심으로 상대를 아끼는 사람은 고집을 부리기 보다 자신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개선을 위한 노력이야말로 상대의 열망을 근사치로 추측하게 해주는 증거인 셈입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박사의 지지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습니다. 나경원 의원과 유승민 의원이 경선에서 빠져나오고, 김기현 의원이 여러 실수를 저지른 탓에, 일시적으로 지지율이 반등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안철수 박사가 김기현 의원보다 부족하다고 볼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안철수 박사는 단일화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고, 기존 정치, 관료 기득권과 거리가 먼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당이 새로움으로 승부하려면, 여전히 안철수 박사가 유용할 것입니다.


물론, 안철수 박사가 나라를 구할 정치인이냐고 물으면 선뜻 긍정하기 힘듭니다. 정계에 입문한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안철수 박사는 아직까지 충분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안철수 박사가 내세운 공약도 특별히 실용성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안철수 박사가 당대표를 넘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누구와 내각을 꾸릴 수 있을지 선명하게 예측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안철수 박사는 사회주의자도 아닙니다.


그래도, 저는 안철수 박사가 여러 최고위원 사이에서 총선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남녀노소 두꺼운 화장으로 원래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시대에, 안철수 박사는 겉모습이 화려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남의 당 일이라 투표권은 없지만, 국민의힘 당원들이 안철수 박사에게 실력을 증명할 기회를 허락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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