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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Feb 09. 2023

서론부터 다시 씁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서론 쓰기 참 어렵습니다.

최훈 작가의 웹툰 '삼국전투기'에서, 조조는 "실수한 지점이 본전이다. 거기서 얼마나 빨리 돌아오느냐로 손해가 결정된다"라고 했습니다. 역사 속 조조도 저런 마음가짐으로 살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한중에서 긴 시간과 병력을 허비했을 것입니다.

어제 올린 '책임 있는 자유'의 서론은 너무 장황해 보여서 다시 쓰고 있습니다. 글 앞 부분에서 흥미를 유도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는데, 생각만큼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위왕의 말씀처럼, 이럴 때에는 과감하게 지우고 처음부터 고민하는 편이 마음 편합니다.



아래는 문제의 장황한 서론입니다.


KBS가 애니메이션 '원피스'를 송출할 때에는, 해병이 까맣게 칠해진 칼을 휘둘렀다. 해적은 담배 대신 사탕을 물거나, 담배 없이 연기만 내뿜었다. 어떤 캐릭터는 치명적인 공격을 받아도 피를 흘리지 않았고, 누가 억지로 덧칠한 듯한 상의로 가슴을 감췄다. 물론, 원작은 이렇지 않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기준에 따라서, KBS가 청소년에게 유해한 장면을 검열한 것이다.

이렇게 검열된 버전이 송출된 이유는 우리나라 정부가 엄한 아버지를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청소년을 유해한 환경에서 분리하고 훈육하려 한다. 이런 '가부장주의' 정책은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우리나라는 만화 속 날붙이와 담배를 모자이크로 가리고, 성인물을 공급하는 사이트를 차단할 정도로 꽤나 엄격하게 가부장주의를 고집하고 있다.

이런 가부장주의는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칼을 검게 칠하고 담배를 사탕으로 바꾼다고 해서, 청소년이 바르게 성장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애초에 바른 청소년의 모습이란 무엇인가? 담배와 성인물을 멀리하고, 정부가 지정한 건전 시설만 이용하는 청소년이 정말 건강하다고 볼 수 있을까? 게다가, 정부의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기는 한 건가? 정부 검열 기관은 이런 의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정부가 룸카페를 단속하기로 하면서, 한동안 다른 이슈 탓에 서로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던 가부장주의와 반가부장주의가 다시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청소년 커플이 침대를 갖춘 룸카페를 모텔 대신 이용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부가 룸카페를 유해 시설로 지정하고 단속해야 한다는 사람과 단속은 과하다는 사람이 룸카페 밀실보다 뜨겁게 대립하고 있다.

룸카페 논쟁은 한 번 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금욕을 강요하는 듯한 가부장주의 정책에 지쳤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가부장주의를 사수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논쟁이 사회적 갈등으로 확대되기 전에, 우리는 정부나 사회가 개인의 일상생활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 정부가 자유방임주의와 가부장주의 중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어야 하는지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

이 글에서, 나는 자유주의자가 정당하게 청소년의 룸카페 이용을 단속할 수 있고, 정부는 일정 조건이 갖춰 지기 전까지 청소년의 룸카페를 단속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규범의 충돌은 결코 해결된 적 없는 난제다. 정치인과 시사평론가들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정치철학자들도 하나의 정답에 합의하지 못했다. 심지어 자유주의 철학자들도 서로 대립하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도 아닌 내가 답을 대신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비전문가라도 가부장주의가 자유로운 사회를 반드시 무너뜨리지는 않는다는 근거, 그리고 정부의 단속을 지지할 근거를 한두 개 정도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 근거를 활용해서, 가부장주의 정책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전근대적인 수구로 취급받지만 사실은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사람들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 어릴 때 마음껏 놀 수 있으면 자유로운 걸까?

2. 자유주의와 가부장주의의 오묘한 관계.

3. 룸카페를 단속해야 하는 근대적인 이유.

4. 책임 있는 자유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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