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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Feb 09. 2023

상식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누군가에게 비상식적인 사람입니다.

이 시대에 상식을 외치는 사람은 둘 중 하나입니다. 더 이상 상식이 통하지 않는 현실을 외면하는 수구주의자거나, 자신의 상식이 모두에게 통한다고 믿는 독단주의자이거나. 어느 쪽이든, 그다지 합리적인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대체로, 상식은 한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판단 감각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판단 감각은 옳고 그름을 순식간에 판단하는 자동 사고 또는 직관 같은 정신활동을 말합니다. 소금이 혀에 닿으면 곧바로 짜다고 느끼는 것처럼,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명제를 보면 순식간에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시각이나 후각 뿐만 아니라, 도덕 규범과 논리 규칙도 감각의 영역입니다. 사회 구성원 다수가 어떤 도덕, 논리 감각을 공유할 때, 그 감각이 곧 상식이라고 불립니다.


과거에는 상식이 힘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다수가 공유하는 감각과 어긋나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배제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눈치껏 다수와 호흡을 맞춰야 했고, 그러지 못 하는 사람은 '센스 없다'고 평가받고 배제되었습니다. 지금도 배제가 계속되고 있지만, 과거의 배제는 더 엄격하고 철저했습니다. 과거의 상식은 구속력을 갖고 있던 셈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주의가 어설프게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모든 개인의 고유 영역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 영역에만 눈을 떴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편한대로 사상이나 현실을 받아들이기 마련입니다. 사람들 마음 속에서 개인주의가 무간섭주의로 변질되면서, 사회를 하나로 묶던 관습이나 질서는 무분별하게 부당한 간섭, 일명 꼰대질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같은 소금을 핥더라도 사람마다 짠맛 수준을 다르게 느끼는 것처럼, 같은 명제나 상황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합니다. 산업화 세대가 믿는 상식은 민주화 세대가 믿는 상식과 다르고, 민주화 세대가 믿는 상식은 요즘 세대가 믿는 상식과 다릅니다. 남자가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은 여자가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과 다릅니다. 진보 성향을 가진 사람과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 두 성향이 대등하게 공존하는 사람도 다 다르게 세상을 봅니다. 거의 모든 토론이 항상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애초에 서로 느끼는 감각이 다르니, 소통 자체가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몰상식한 사람입니다.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도덕, 논리 감각이라는 의미의 상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여전히 상식을 앞세우는 정치인이 많습니다. 대선 후보들은 하나 같이 상식이 통하는 사회, 상식을 되찾은 사회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말은 옛날처럼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을 배제할 수 있는 시대로 돌아가자는 의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상식 회복을 약속한 대통령이 얼마나 많은 갈등을 낳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정치에서, 상식은 몰상식하다는 낙인을 찍어서 상대편을 배제하기 위한 수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우리나라 상식이든, 글로벌 상식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상식을 의심해야 합니다. 정확히는, 상식을 외치는 사람을 의심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자신만 옳다고 믿는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상식은 유령입니다. 헛된 유령 이야기로 다른 사람을 밀어내려는 사람은 건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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