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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Feb 11. 2023

룸카페 단속이 정당할 수 있는 이유 (1)

룸카페를 단속하는 정부는 자유의 적일까요?

우리나라 정부는 엄격한 가장이다. 정부는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을 광범위하게 규제한다. 우리는 영상 속에서 누군가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여성의 속살이 조금이라도 드러나는 장면도 볼 수 없다. 성인이 되어도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다. 정부의 판단에 따르면, 저런 것들이 우리에게 유해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자녀를 지도하듯이 국민을 이끄는 정부를, 전통적인 가부장을 닮았다고 해서 '가부장주의적'이라고 말한다.


최근에 정부가 미성년자 커플을 받는 룸카페를 단속하면서, 가부장주의자와 반가부장주의자가 다시 맞붙고 있다. 룸카페 논쟁은 한 번 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금욕을 강요하는 듯한 가부장주의 정책에 지쳤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가부장주의를 사수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익명 뒤에서 일어나는 인터넷 논쟁이 불필요한 갈등을 낳지 않도록, 정부가 개인의 일상생활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를 민주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이 논쟁에서, 비전문가가 선뜻 답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 자유와 정부 규제 사이의 충돌은 결코 해결된 적 없는 난제다. 정치인과 시사평론가들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정치철학자들도 하나의 정답에 합의하지 못했다. 심지어 자유주의 철학자들도 정부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를 두고 서로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비전문가라도 가부장주의가 반드시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규제하는 일이 반드시 부당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한두 개 정도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 근거를 활용한다면, 사실은 누구보다 자유를 사랑하고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가부장주의 정책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전근대적인 수구라고 비난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가부장주의자는 자유 사회에서 당당하게 룸카페 단속을 지지할 수 있다.


1. 정부가 간섭하지 않으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2.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일은 반드시 부당할까?


3. 룸카페 단속은 왜 필요할까?


4. 세상을 현실적으로 보는 자유주의자를 위해.


_____

1. 정부가 간섭하지 않으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정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만큼 분명한 사실은 없다."

- 존 제이, 연방주의자 2번


개인의 자유는 현대 문명의 기본 가치다. 그런데, 대체 자유란 무엇일까? 마음대로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하고 선정적인 영화를 즐길 수 있으면, 우리는 자유로운 걸까? 미성년자가 마음껏 담배를 피우고 연인과 룸카페를 이용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자유로운 곳일까?


흔히 '자유'라고 하면 자유방임 또는 정부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것을 떠올리지만, 정부의 무간섭이 곧 자유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정부의 무간섭이 곧 자유라면, 무법지대 같은 소말리아가 질서 정연한 독일보다 자유롭다는 다소 어색한 결론이 도출된다. 자유를 정부의 무간섭으로 정의한다면, 무법지대가 더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는 온몸이 불타는 와중에도 행복하다고 억지부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유는 개념의 문제가 아니라 느낌과 행동의 문제다. 실질적으로 자유롭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자유와 가부장주의적 간섭이 반드시 충돌하지는 않는다. 인간 사회에서 자유는 정부의 간섭으로 실현되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개인을 동등하게 보호하는, 강력한 중앙정부가 없다면, 우리는 순전히 타인의 선의에 의존해서 자유를 지켜야 한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충성스런 자유주의자로 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모두가 타인의 자유를 지키는 일을 매순간 우선시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감시자가 없는 곳에서 얼마든지 타인을 공격하고 억압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강력한 중앙정부가 가부장주의적으로 도둑질을 감시하고 금지하지 않으면, 누구도 재산을 소유할 자유를 보장받을 수 없다.


게다가, 모든 자유는 정부가 사회 구성원에게 하나의 언어를 강제할 때 비로소 논의될 수 있다. 우선 서로 말이 통해야 나와 타인에게 어떤 자유가 있는지, 서로의 자유가 충돌할 때 어떻게 타협해야 하는지 논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 사회 구성원이 같은 언어를 쓰는 일이 당연해 보이지만, 공용어는 강력한 중앙정부가 탄생하면서 자리잡았다. 과거에는 지역 별로, 계급 별로 사용하는 언어가 매우 달랐다. 심지어 문자도 통일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런 소통 장벽을 부수고 모두가 자유를 이해할 수단을 갖게 한 것이 바로 강력한 중앙정부다(세종대왕의 한글 창제가 왜 백성 사랑으로 통하는지 기억하자).


자유 한 마디로 정부의 포르노 사이트 규제에 반대할 수는 없다. 자유와 정부 간섭이 반드시 반비례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정부가 간섭할 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자유가 곧 정부의 무간섭이 아니라면, 정부가 포르노 사이트를 규제한다고 해서 반드시 자유를 억압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유는 정부 간섭을 반대하는 근거로 부족한 셈이다.


모든 가부장주의 정부 꼭 자유의 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자유 세계에 속하는 정부 중에 안전벨트 착용이나 영상 매체 심의 규정 같은 가부장주의 정책을 전혀 도입하지 않는 정부는 없다. 모든 정부는 어느정도 가부장주의적이고,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자유롭다고 느끼며 산다. 따라서,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자유인가, 간섭인가'가 아니라, '어떤 간섭인가'이다.


"습지와 절벽 주의에 울타리를 쳐서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그저 제한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 존 로크, 통치론


"자유주의자들은 이론적으로 조리 있게 복지국가와 그 이상의 국가도 완벽하게 정당화할 수 있다."
- 애덤 스위프트, '정치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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