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완 Feb 16. 2023

의심쟁이의 정치관

사회주의자이지만, 보수적인 가치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제 정치관을 물으면, 저는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 또는 중도좌파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평소 제가 쓰는 글의 일부만 보신 탓인지, 어떤 분들은 제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십니다. 이승만,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을 재평가하자고 하지를 않나, 전장연을 비판하지를 않나, 평등 그 자체를 위한 재분배에 반대하지를 않나. 언뜻 보면 글의 논조가 보수적으로 보이기는 합니다.

딱히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서구의 보수주의 사상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보수주의자들의 주장도 어느정도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념을 떠나서, 저는 의심이 많습니다. 어떤 주장도 절대 진리라고 단정짓지 않습니다. 제 정치적 생각의 시작은 온건한 회의주의입니다. 회의적으로 생각해서 고른 첫번째 '독단'이 미국의 프래그머티즘을 판단 잣대로 활용하자는 것이고, 그 판단 잣대로 선택한 두번째 독단이 바로 사회주의입니다. 물론, 사회주의도 절대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만큼, 다른 영역에서는 다른 사상의 도움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비록 제 정치관에는 사회주의 성분의 비율이 많기는 하지만, 저는 모든 사람이 사회주의에 동의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서로 다른 도덕 직관을 타고난다는 이론이 상당히 지지받고 있고, 여태껏 한 가지 사상이 압도적으로 지지받은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사회주의자는 절대 생각을 꺾지 않는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와 부대끼며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더라도, 만장일치가 실현되는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철저히 과학적 사고방식과 데이터만 갖고 대화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모든 이론을 끝까지 의심하다 보면, 결국 어떤 증명 못할 믿음이나 직관이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추론은 이런 출발점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객관성은 생각보다 달성하기 어려운 관점입니다.

따라서,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제 생각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의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답을 찾기 위해 대화한다면 누구도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근거와 개념이 완벽하게 명확한 정답이 아니라, 각자의 설명하기 어렵고 증명하기 어려운 믿음을 잠깐 내려놓는 타협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마땅히 지지할 정당이 없다면 보수 정당을 지지할 거고, 특별히 제가 양보하기 힘든 핵심 가치와 어긋나지 않는다면 보수적인 주장도 수용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를 함부로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회주의적이라고 여겨져도 좋습니다. 승자 없는 갈등의 늪에서 허우적대느니, 기회주의적으로 여러 이슈에 대응하는 와중에 유의미한 법안을 하나 씩 통과시키는 편이 백반 배 낫습니다. 불필요한 갈등은 식자들을 위한 사치재일 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Chat GPT가 발전하면 누가 혜택을 볼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