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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Feb 19. 2023

우리나라는 스머프합니다.

이대로 가면 굉장히 스머프해 질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하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의미가 통하리라고 은연 중에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의 의미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맥락입니다. 단어나 문장만으로는 의미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같은 표현이라도, 맥락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라면 먹고 갈래?'는 맥락에 따라서 같이 식사를 하자는 의미가 될 수 있고,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자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맥락에 많이 의존하는 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당연히 하나의 맥락을 공유한다고 여깁니다. 상대가 이해하기 쉽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보다, 상대가 알아서 맥락에 맞게 의미를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이런 언어 생활을 '고맥락적'이라고 부릅니다.


고맥락적인 문화는 굉장히 닫혀 있습니다. 구성원이 굉장히 많은 공통 경험을 공유하지 않으면, 각자가 맥락에 맞게 말을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사회 구성원이 공통 경험을 공유한다는 말은 어떤 맥락에서 어떤 표현이 사용되는지 같이 학습한다는 의미입니다. 고맥락 문화에서는 모든 표현이 특정 집단에서만 통하는 은어와 다를 게 없습니다.


(고맥락 문화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바로 '스머프' 한 단어로 거의 모든 상황을 묘사하는 스머프 문화입니다.)


이런 고맥락 문화에 익숙한 탓인지, 우리나라에는 자기 맥락에 따라 언어를 멋대로 해석하는 나쁜 습관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모두가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탓에, 상대가 같은 표현을 다른 맥락에서 사용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맥락에 너무 의존하는 습관은 일상 대화부터 해외 고전 읽기까지 우리의 소통을 방해하는 주범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경험을 공유한다면,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끼리는 소통할 때 불편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사회가 빠르게 변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끼리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일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끼리도 불편한데, 완전히 다른 맥락을 갖고 있는 외국인과 소통할 때는 더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더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곳이 되기 위해서는, 전국민에게 개념 분석 또는 명확하게 표현하기를 권장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아직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근대화, 보다 정확히는 서구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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