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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Mar 01. 2023

베블런재 같은 연애는 싫습니다.

준비하고 있으면 기회가 오겠죠.

누가 여자친구 있냐고 물어보면 '하하, 그런 건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꿈에서 유니콘은 한 번 봤네요.' 라고 대답합니다. 어차피 지금은 한창 열정적이어야 할 20대가 연애도 결혼도 포기하는 시대입니다. 연애가 당연한 일이었던 시대에는 연애 이력서가 비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인간성을 의심받았을지 모르지만, 요즘 그런 편견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굳이 숨길 이유가 없습니다.

연애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누구한테 보여줄 만한 외모도 아니고, 말 주변도 별로고, 돈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저와 잘 맞는 상대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없습니다. 한 마디 말하고 나서 세 번 고민하는 성격인지라, 안 맞는 사람과 만나면 얼마나 마음 고생을 하게 될지 상상도 안 됩니다. 이런 저런 여건을 생각해 보면, 확률이 나쁜 뽑기 게임에 굳이 시간과 돈을 쓰느니 다른 유익한 일에 집중하는 게 더 나아 보입니다.

진취적인 사람은 이런 모습을 한심하게 볼지도 모릅니다. 사내 자식이 뭘 그렇게 재는 게 많냐는 소리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하지만, 별 거 없으면서 허세를 부리느니 차라리 집에 틀어히는 쪽이 민폐를 안 끼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자아가 비대해서 주변을 괴롭히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고작 한 살 더 많으면서 열 살 많은 어른처럼 대접받으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철썩 같이 믿지 않는다면,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정도로 치근덕거리지 않을 것입니다. 물에도 치사량이 있는 것처럼, 자신감에도 정도가 있습니다.

통장 잔고가 조금 안정된다면, 저도 사랑을 찾고 싶습니다. 시장경제에서는 연애도 공짜가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명품 파카를 사달라고 조르는 베블런재의 나라에서, 궁핍한 연애를 견딜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적당한 잔고는 필수입니다.

물론, 데이팅 앱을 설치하거나 술집을 기웃거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놀이는 저랑 안 맞습니다. 나중에 돈이 생기더라도 두껍게 화장하거나 롤렉스 시계를 걸치지 않을 것입니다. 연애 한 번 해보겠다고 익숙하지 않은 짓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개조하려는 사람과는 만나고 싶지 않고, 베블런재는 제 취향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되도록 깔끔하게 하고 밖에 자주 나가는 것인 듯합니다. 눈먼 행운의 여신이 변덕을 부린다면, 제게도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까지는 유튜브로 고양이를 보면서 만족해야 겠습니다. 아, 수달도 귀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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