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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Mar 03. 2023

정부 개입은 만악의 근원이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정부 없이 살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든 정부 개입을 적으로 보는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은 실제 역사와 인간 과학을 무시해야 성립할 수 있는 비주류 이데올로기인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와 정부는 단 한 번도 분리되어 있던 적이 없습니다. 자본주의는 강력한 정부가 등장한 덕에 국민경제, 국제경제 단위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 대륙의 보수주의자들이 강력한 중앙정부에 반대한 이유는 중앙정부가 자본주의를 퍼뜨려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지역 전통을 파괴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국민국가 전체를 포괄하는 강력한 정부가 자본주의를 확장하는 주체였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자본주의가 가장 자유방임에 가까웠던 시기는 빅토리아 시대인데, 그 빅토리아 시대에도 인도 정복이나 아편 전쟁 등 정부의 다른 개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자유방임의 대표 주자로 통하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경제는 해밀턴이 설계한 연방정부의 경제 정책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에 자본주의를 퍼뜨린 것도 전통 무라 공동체를 파괴하고 근대적인 토지소유권을 확립한 메이지 정부였습니다.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 개입과 함께 발전했습니다. 정부의 경제 개입이 나라를 더 가난하게 만든다면, 지금까지 정부 규모와 규제 법령이 증가하는 동시에 경제 규모도 증가한 현상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과 싱가포르가 순식간에 발전한 현상과도 모순됩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 정부의 경제 개입이 크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자유방임 자본주의가 자유가 허락되었을 때 인간 본성이 발현된 모습이라면, 그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나쁜 부작용을 교정하려는 시도 역시 다른 사람과 함께 산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인간 본성이 발현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 과학이 발견한 인간 본성은 복잡하고 유연한데, 왜 특정 상황에서만 발현되는 특정 본성에만 주목해야 할까요?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자들은 의외로 소유권 문제를 가볍게 여깁니다. 철지난 천부인권설이나, '먼저 가진 사람이 임자' 따위의 납득하기 힘든 주장으로 소유권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인간의 역사는 침략과 약탈의 역사입니다. 자연히, 모든 재산에는 장물이 포함되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노동력으로 생산한 것, 타인에게 평화롭게 양도받은 것이 정당한 소유물의 조건이라면, 세상에 정당한 소유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지금 소유권을 정당화해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절제된 소유권이 다수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 그리고 깊게 따지고 들면 곤란하다는 점 뿐입니다.

사람들이 단순히 질투 때문에 정부 개입을 지지한다고 보지는 않지만, 설령 질투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인간 본성이라면, 사람들이 질투심에 빠져서 자유로운 경제 자체를 적으로 돌리지 않도록 여러 기회를 보장할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정부의 경제 개입이 인간 본성을 바꿀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정부의 냉담함과 꼰대의 잔소리가 인간의 질투 본능을 바꿀 수 있다는 듯이 생각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자본주의는 교환 경제입니다. 교환 수단을 가진 상대가 있어야 성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환 수단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어디에선가 대가를 주고 얻어야 합니다. 모든 것에 가격표가 붙는 경제에서는 교환에 참여하는 일 역시 유료인 셈입니다. 다시 말해서, 처음부터 가진 게 적은 사람은 교환에 참여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불균형한 상황에서 교환이 계속된다면 결국 교환 자체가 정체될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군가가 교환 수단을 관대하게 빌려주거나 정부가 교환 수단을 나눠주지 않으면, 교환 경제는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다른 체제와 비교했을 때, 자본주의가 가장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자본주의는 정부도 재분배도 없는 자유방임 경제가 아닙니다. 정부와 투닥거리며 함께 성장한 혼합경제입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현대 자본주의가 최선이었다고 해서 다른 체제에 대한 가능성을 닫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맹목적으로 자본주의를 탓하는 태도는 무의미하지만, 자본주의의 그림자를 무시하는 태도도 무의미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경제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역사와 심리학을 부전공으로 수강하도록 강요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공상적인 자유방임주의 이야기를 그만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이버 자유방임주의자들은 약자에게 무관심하고 싶다는 마음을 거창한 이론으로 포장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 무관심이 결국 자유를 무너뜨리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언제쯤 납득해 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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