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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Mar 07. 2023

새 정부 노동정책 유감

노동시간 유연화가 불러올 후폭풍

어려운 시기에 긴축 기조를 고집하는 용산이 노동시간 규제까지 풀고 있습니다. 선진국은 어떻게든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고심하는데, 우리나라만 노동자를 편리하게 굴릴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우리나라는 주요국 중에서 가장 과로하는 나라인데, 용산은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의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규제 완화는 결국 우리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것입니다. 편리한 환경에 익숙해진 기업은 점점 경쟁력을 잃을 것이고, 무엇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을 가진 유럽과 미국은 해외 기업을 견제할 꼬투리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앙정부가 노동시간을 획일적으로 줄이는 정책이 기업인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적절한 인재를 고용하고 남는 인력을 해고하기 어려우니, 기업인은 이미 있는 인력을 유동적으로 활용하고 싶을 것입니다. 이런 유연한 경영을 가로막는다면, 그만큼 기업인에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노동시간 규제가 풀어지면, 당장은 기업인이 편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편리함에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낮은 규제에 익숙해진 기업인은 멀리 보고 투자하기 보다, 당장 고를 수 있는 편리한 해법만 고집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편리한 시장에 익숙해진 우리 기업은 까다로운 기준을 요구하는 선진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규제 완화 탓에 우리 기업이 국제 경쟁에서 뒤쳐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기업의 유연한 대응을 막고 경쟁을 억제하는 규제는 사회 전체적인 손해일 수 있지만, 노동시간과 품질에 관한 규제는 혁신을 촉진하고 경쟁력을 성장시키는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유럽의 높은 생산성은 까다로운 기준을 모든 기업에 적용해서 혁신 경쟁을 촉진한 결과입니다. 반대로, 우리 기업이 만년 저생산성에 시달리는 원인은 혁신 경쟁 대신 편리한 비용 절감 전략을 고르기 쉬운 환경 탓입니다.


또한, 무분별한 규제 완화는 유럽과 미국 시장에 진출한 우리 기업을 정치적으로 위협할 수 있습니다. 리쇼어링과 인소싱,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유럽과 미국은 친환경적이지 않고 사회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 기업을 규제하거나 차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입니다.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려는 유럽연합과 미국이 우리 기업에만 특혜를 달라는 뻔뻔한 요구를 들어줄리 없습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 때 유럽연합으로부터 ILO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법을 통과시켜서 보조금을 받는 조건으로 정기적인 임금 협상과 육아 분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유럽연합과 미국의 공정거래, 경쟁 관련 부서는 더더욱 까다로워지고 있는데, 우리나라 기업은 그런 까다로움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나라 기업이 노동자를 최대한 낮은 임금으로 주 69시간 동안 일시켜서 만든 상품을 유럽과 미국에 수출한다면, 불공정 거래나 노동권 침해를 명분으로 유럽과 미국 정부로부터 차별받고 시장에서 배제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기업은 온실 속에서 따뜻하게 지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정부는 보조금을 주고 경쟁을 억제해 줬습니다. 시장이 아니라 특정 기업인을 보호해 온 것입니다. 그 탓에, 우리 기업은 투자하고 혁신하는 대신 비용을 절감해서 경쟁력을 벌충하는 전략에 안주해 왔습니다.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또 다른 보모국가 정책으로 전락한 셈입니다.


이제 온실 속 기업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은 정부가 주도하는 리쇼어링, 인소싱 정책으로 자국 기업과 노동자를 지원하는 새로운 국가주의(Statism) 시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분별한 규제 완화는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자 선진국에 꼬투리 잡힐 명분이 될 것입니다. 까다로워지고 있는 거대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까다로워진 기준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필요한 건 혁신을 촉진하는 정책과 새로운 글로벌 스텐다드에 맞춘 규제이지 철지난 방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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