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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Mar 13. 2023

무정부주의는 이상합니다.

나라가 없다면 권리도 없습니다.

정부가 사라져야 재산권을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은 많이 이상합니다. '이것이 내 것이다'라고 주장하려면 가장 먼저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우선 상대와 말이 통해야 하고, 상대가 나와 협력하는 관계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정당하게 손에 넣었다는 사실을 공증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아무리 재산권의 정당함을 호소해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조건이 강력한 정부 없이 긴 시간 동안 유지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례가 있기는 한가요?


사회 전체에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강력한 정부가 없으면, 대체 누가 어떻게 한 사회에서 통하는 공용어를 퍼뜨릴 수 있을까요? 정부가 법적으로 활용되는 말의 의미를 정해두는 것처럼, 중앙에서 한 단어를 어떻게 사용할지 합의하고 명령하지 않으면, 불명확함에서 벗어날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 한 두 사람, 한 두 마을끼리 말의 의미에 합의할 수는 있겠지만, 공용어가 정부 없이 그 이상으로 확장된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공용어의 의미를 보장하는 중앙 권위가 없다면, 재산권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말장난에서 나기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말이 통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내가 상대와 최소한의 협력관계 즉, 서로 해치지 않는 관계여야, 내 소유권 주장이 의미 있을 수 있습니다. 애초에 서로 적은 자원을 두고 다투는 관계라면, 상대는 언제든 내 소유물의 정당성을 의심하거나 무시할 것입니다. 잉카 제국이 주변 부족 사람들을 납치해서 제물로 희생시킨 것처럼 말입니다. 남미에서 인신공양이 사라진 것은 스페인 제국이 인신공양을 중단시킬 수 있는 중앙 권위를 확립시킨 뒤부터입니다. 물론, 스페인 제국 역시 또 다른 약탈자였지만 말입니다.


서로 평화로운 관계라고 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습니다. 예로부터 '정당한 소유물'이란 내 힘으로 주인 없는 자연물을 가공한 것이거나 남에게 무력을 행사하지 않고 정당하게 양도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오랜시간, 안정적으로, 공신력 있게 보증해 줄 존재가 없다면, 누가 무슨 수로 정당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정부가 아니면, 누가 안정적으로 신뢰받는 보증인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까요? 돈을 받고 자료를 보관해 주는 업체를 상상해 볼 수 있겠지만, 돈만 보고 움직이는 업체가 과연 얼마나 신뢰성 있을까요?


혹여나 정부 없이 세 조건이 다 달성된다고 해도, 내 재산권오래 보장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다고 인정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모두가 충성스런 개인주의자로 태어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모두에게 개인주의적 사고를 가르치고 강제하지 않으면, 모두가 언제든 자신에게 편리한 논리를 만들어서 타인의 것을 강탈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서로 협력해서 약탈자에게 맞서려고 한다면, 결국 배신자를 색출하거나 효과적인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 자기 권리를 일부 내려놓을 수 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정부 없는 사회는 정부 있는 사회를 무력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무엇이 누구의 것인가'하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개인에게 명확히 귀속된 소유권은 어디까지나 근대의 산물입니다. 강력 중앙정부가 나타나고, 그 중앙정부들끼리의 국제적으로 합의기 전까지, 모든 사회가 합의한 하나의 소유 규칙은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많은 나라와 개인이 토지와 자원을 두고 갈등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사라지면, 자유가 남는 것이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이 남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무정부주의가 있지만, 그 중 최악은 간섭받지 않을 자유를 명분으로 삼은 무정부주의입니다.


"정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만큼 분명한 사실은 없다."

- 존 제이, 연방주의자 2번


"나라 없이 권리 없다."

- 스티븐 홈즈, '권리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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