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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Mar 17. 2023

지중해에서 배울 수 있는 것

복지국가 반면교사, 이탈리아.

이탈리아도 나름 복지국가입니다. 이제는 제일 큰 복지국가가 된 프랑스, 벨기에보다는 적지만, 덴마크, 스웨덴과 맞먹는 사회복지지출 비율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다지 경제적으로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실업율은 높고, 사회혼란은 극심합니다.

이를 보고 '복지국가의 실패'를 선언하는 건 과도한 일반화입니다. 마치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으니까 글로벌 금융기업은 실패한 경제조직이라고 이야기하는 꼴입니다. 이탈리아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덴마크와 핀란드, 오스트리아와 독일 등 다른 복지국가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복지국가는 하나의 체제가 아니라, 여러 종류의 체제를 통틀어서 부르는 말입니다. 특정 복지국가가 실패했다고 해서 복지국가 전체를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1950년대 이후 급속도로 경제를 성장시킨 이탈리아는 GDP의 30%에 달하는, 꽤 많은 예산을 복지에 지출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예산은 주로 정규직 일자리를 가진 노동자의 노후 대비에 집중되었습니다. 덴마크와 스웨덴이 개인의 경쟁력 하락을 예방하는 사회투자 정책에 돈을 썼다면, 이탈리아는 이미 경쟁력이 벌어지고 나면 뒤늦게 수습하는 사후 재분배 정책, 그나마도 나이가 들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공적 연금에 돈을 썼습니다.

거대한 공공부문과 가부장주의적인 기업 문화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할 때에는, 정규직 노동자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데에 복지 예산을 집중해도 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나 긴 경기침체 탓에 이탈리아의 공공부문은 크게 축소되었고, 기업 문화도 예전 같지 않아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복지국가 이탈리아는 이미 일자리가 있는 사람이 안정적으로 생활하도록 도왔을 뿐, 일자리를 잃지 않게 돕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안정적인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자, 이탈리아인은 많은 세금을 감당하고도 냉혹한 경쟁 속에 버려졌습니다.

연금 같은 사회보험과 생활비 부담을 덜어주는 데에 집중하는 복지정책은 안정된 일자리라는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우선은 돈을 벌 일자리가 있어야 보험료도 내고, 생활비도 낼 수 있습니다. 정부는 개인이 이미 위험해진 다음에 나서기 보다는, 위험해지기 전에 나서야 합니다. 실제로, 아동 - 청소년기에 개입하는 정책이 성인이 된 후에 개입하는 정책보다 효과가 좋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탈리아를 보면, 규모는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복지제도를 다룰 때에 가장 먼저 신경써야 하는 것은 양보다 질입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들이부어도, 돈 쓰는 방식의 질이 나쁘다면 좋은 결과를 창출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획기적으로 정부지출을 늘리고도 실패한 것처럼 말입니다. 복지국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탈리아는 참고할 만한 반면교사입니다.


"불평등과 정부 규모의 반비례 관계가 확실히 모든 나라에서 일률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즉 동일한 사회복지지출 규모를 가지고도 어떤 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불평등 수준을 낮추는 데 훨씬 더 성공적일 수 있다. 복지국가가 정말로 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데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나라마다 다르다. 복지지출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한 가지 문제점은 어떤 나라(이탈리아가 완벽한 예인데)의 경우 복지지출이 지나치게 연금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Boeri and Perotti, 2002."
- 알레시나, 알베르토, 복지국가의 정치학, 전용범 옮김, 생각의 힘, 2012, 89p.


이탈리아의 사회보장정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탈리아의 사회보장정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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