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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Mar 17. 2023

학교폭력은 '염증'입니다.

그 원인을 치료해야 합니다.

피부염이든 위염이든, 우리가 겪는 염증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염증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학교 폭력 같은 사회문제도 마찬가집니다. 진부하게도, 정부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같은 엄벌주의 정책으로 학교 폭력에 대응하려 합니다. 이건 피부에 박힌 가시를 빼지 않고 소염제만 먹는 꼴입니다. 학교 폭력을 유발하는 가시를 뽑지 않으면, 누군가는 계속 <더 글로리>의 새로운 시리즈를 직접 촬영하게 될 것입니다.

엄벌주의로는 가시를 뽑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심리학자와 행동경제학자가 밝힌 것처럼, 인간은 엄격한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매순간 계산적으로 행동한다면, 강회된 처벌이 무서워서 폭력성을 자제할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모두가 매순간 계산적일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처벌이 강해도, 힘에 취해서 주먹을 휘두를 때에는 처벌 따위 생각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는 괜찮을 거야'라는 근거 없는 낙관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엄벌주의는 범죄를 예방하는 일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엄벌주의는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거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뛰어난 과학자들도 사람이 사람을 공격하는 이유를 다 밝혀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언제 공격성이 강해지는지는 밝혀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누구에게도 견제받지 않을 때 공격성을 드러냅니다.

아무리 법적으로는 똑같은 국민이라도, 사람 사이에는 위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사회적인 동물은 누구나 이 위계에 예민합니다. 낮은 지위는 곳 생존 위협이고, 높은 지위는 곧 안전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일어난 정순신 사건부터 수년 전에 모두를 분노하게 한 땅콩 회항 사건까지, 우리가 아는 유명한 폭력 사건 중에는 이런 지위 격차 탓에 일어난 것이 많습니다. 아빠가 검사인 학생은 자연히 자신이 피라미드의 윗층에 있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배울 것입니다. 만약, 피라미드 아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견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아빠가 검사인 학생은 자신의 지위에 취해서 폭력적으로 변할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부 환경을 통제하고 싶어하고, 높은 지위는 더 많은 환경, 특히 많은 타인을 통제할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너무 큰 힘을 가진 인간은 세상이 장난감처럼 보일 것입니다.

지위가 낮은 사람도 나름의 이유 탓에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낮은 지위는 곧 생존 위협입니다. 지위가 낮은 사람은 자주 생존 위협을 느낄 겁니다. 매 순간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은 그만큼 안전에 예민해 집니다. 사소한 말다툼이나 시비에도 생존을 위협받은 것처럼 대응할 것입니다. 안전을 위협받을 때, 인간이 고를 수 있는 대응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회피이고, 다른 하나는 투쟁입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서 투쟁을 고를 것이고, 그 투쟁의 결과가 바로 묻지마 살인이나 욕설 같은 폭력 행사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위 격차가 심한 곳일수록 학생의 안전도 위험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위 격차가 극심한 곳입니다. 아빠가 검사인 아들은 지위를 이용해서 더 많은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아빠가 회장인 아들은 남들이 누릴 수 없는 기회를 당연하게 누립니다. 그리고 이런 지위를 남들에게 자랑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지위가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과잉 경쟁에 뛰어들거나, 높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명품으로 자신을 치장합니다. 매순간 지위 격차를 느끼기 쉬운 곳인 만큼, 자제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학생은 높은 지위에 금방 취하거나, 낮은 지위에 보다 예민할 것입니다. 점점 더 가혹해지는 학교 폭력은 점점 더 벌어지는 지위 격차의 부산물인 셈입니다.

따라서, 학교 폭력을 억제하는 첫번째 방법은 지위 격차를 억제하는 것입니다. 물론, 모두가 조금씩 다른 유전자를 갖고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며 다른 행운을 누리기 때문에, 지위 자체를 없애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어떤 사회에서든 누군가는 더 잘 살 거고, 누군가는 더 못 살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지위와 상관 없이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보장하고(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높은 지위로 올라갈 기회를 주고, 누구도 능력과 무관하게 부모의 지위를 고스란히 상속하지 못하도록 견제할 수는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경제력 격차를 억제한다면, 가혹한 지위 경쟁은 누그러질 것이고, 또한 모두가 법적 보호라는 서비스를 가능한 한 동등하게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격차 억제가 사회적 평화와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엄벌주의니 인성교육이니 하는 정책은 대증요법일 뿐입니다. 학교 폭력이라는 염증의 원인은 피부 깊은 곳까지 찌르고 들어간, 과도한 지위 격차라는 가시입니다. 그 가시 부터 빼야 합니다. 치료가 너무 늦으면, 염증이 만성화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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