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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Mar 18. 2023

교양 서적으로 정치 공부하기?

딱히 추천하지 않습니다.

교양 정치서적이 밉습니다. 아무리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라지만, 대다수 교양 서적은 사회주의를 고작 '결과의 평등' 또는 '사적소유 폐지'로 정리해 버립니다. 대체 어디 사는 무슨 사회주의자가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쉬운 설명과 무성의한 설명은 엄연히 다르다고 봅니다. 아무리 지면이 좁아도, 사회주의가 여러 사상을 동시에 부르는 동음이의어라는 사실,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평등한 분배보다 형평한 분배를 지지했다는 사실 정도는 풀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편견 탓인지 게으름 탓인지, 그렇게 하는 저자가 많지 않습니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도 그렇지만, 사회주의는 기독교처럼 하나의 인물과 경전을 중심으로 확산된 생각이 아닙니다. 여러 나라에서 여러 사람이 퍼뜨린 생각이 어쩌다보니 사회주의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회주의를 관통하는 공통점을 찾기란 굉장히 어렵습니다. 국가사회주의자는 공적인 목적을 위해 국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는 공공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지방정부가 수도와 가스처럼 중요한 산업을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베른슈타인을 따르는 수정주의자는 여러 계급이 조화롭게 협력하는 혼합경제를 주장했고, 생시몽을 따르는 생시몽주의자는 중앙은행이 경제 전반을 지휘하며 능력에 따라 생산수단을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가장 많은 사회주의들을 포괄할 수 있는 공통점을 어렵게 찾아 보자면, 하나, 사회주의자는 개인이 재산을 이기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여깁니다. 사회주의자는 사회적 목적을 위해 재산권을 집단적으로 규제하거나 통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둘, 사회주의자는 최대 다수의 이익 또는 도덕적 발전에 어울리도록 사회제도를 합리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회주의자는 개인의 이기적 행동이 자연스럽게 최적의 질서를 찾는다거나, 역사적으로 오래 살아남은 질서가 옳다는 생각을 거부합니다. 셋, 사회주의자는 인간의 사회성에 기반한 사회가 옳다고 믿습니다. 형제애, 연대, 협동 등, 사회주의자는 사회구성원이 함께 조화롭게 살기 위해 사회적인 원리에 따라서 분열과 갈등을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 세 가지 특성으로 '모든' 사회주의를 완벽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대다수 사회주의를 설명할 수 있을 뿐입니다. 심지어 어떤 특성은 다른 사상과 겹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전통주의적인 보수주의자는 자본주의가 퍼뜨린 이기심과 역동성으로부터 전통 질서를 지키기 위해 재산권을 집단적으로 규제하려 했습니다. 사회보험, 노동법, 보호무역 등, 전통주의적 보수주의자는 사회주의자와 협력할 수 있을 정도로 집단적인 경제 규제를 적극 옹호했습니다. 거의 모든 보수주의자는 평등한 분배를 거부하고 위계적인 사회를 지지했지만, 사회주의자 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았습니다.

정치사상을 공부할 때에는, 얇고, 참고문헌이 적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썼다는 교양 서적을 되도록 멀리해야 합니다. 그런 교양 서적은 '사실을 무시하고' 한 두 문장으로 정치사상을 일반화합니다. 저자의 편견을 숨기지 않는 경우도 태반입니다. 다른 배경 지식 없이 교양 서적을 읽은 사람은 저자의 편견 어린 거짓말을 고스란히 흡수하기 쉽습니다. 정치사상을 공부하고 싶다면, 수 많은 사상을 한 권으로 담은 교양 서적을 읽기 보다 정치학 교과서를 읽거나, 특정 사상가를 쉽게 해설하는 책을 읽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정치사상은 정치의 역사만큼 깊은데, 그 깊이를 최대한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 교양서적은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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