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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Mar 22. 2023

산불을 가정용 소화기로 제압하자는 조정훈 의원.

월 100만 원짜리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실용적이지 않습니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너무 소극적인 대안를 선보였습니다. (이하 '조정훈 안') 조정훈 의원이 국회 소통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낮은 임금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들여오는 제도가 아주 전례 없는 것은 아닙니다. 1970년대부터 싱가포르와 홍콩은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적극 수입했습니다. 싱가포르는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고, 홍콩은 업종별로 다른 최저임금을 적용합니다. 조정훈 의원이 처음 저임금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도 아닙니다. 작년 국무회의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비슷한 맥락의 제도를 제안한 적 있습니다.1)

외국인 차별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이는 업종별로 차등적인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해서 내국인 가사도우미에게도 똑같이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그만인 문제입니다. 영국과 미국, 일본과 독일,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우리나라처럼 지역과 업종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최저임금을 올리지 않습니다. 업종별 최저임금제와 함께 논의된다면, 외국인 차별 문제는 금방 해소될 수 있습니다.

조정훈 안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우선 조정훈 안은 사실에 기반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소수 정규직 고소득자에게만 혜택을 줍니다. 무엇보다, 사회 갈등을 키워서 저출산 문제를 악화시킬지도 모릅니다. 조정훈 안은 시대착오적이고 비합리적입니다.

조정훈 의원과 오세훈 시장은 싱가포르인이 마치 월 100만 원 이하만 주고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다는 듯이 이야기했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싱가포르는 외국인 유입에 관대한 편이 아닙니다. 외국인은 2년 마다 취업자격을 취득해야 하고, 아무리 오래 일해도 시민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별과 나이, 국적에도 제한이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려면, 싱가포르 정부가 지정한 국가에서 온 23에서 50세 여성이어야 합니다. 이는 곧, 공급이 완전히 유연하지 않은 탓에 생각보다 월급이 높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싱가포르인은 가사도우미의 사회보험료와 병원비를 모두 부담해야 하고, 따로 상해보험까지 가입해야 합니다. 이런 추가 비용들을 살펴볼 때, 싱가포르인이 월 100만 원 이하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기는 어렵습니다.2)

만약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최저임금제에서도 배제하고 사회보험료와 유급휴가를 지급할 의무를 제외하기까지 한다면,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여러 기본권 침해로 비난받고 있는 싱가포르보다 더 질 낮은 제도를 도입하는 셈입니다. 가뜩이나 우리나라의 가혹한 노동조건은 선진국에서 조롱거리인데, 그 정치적 부담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값싼 임금으로 사람을 부려먹는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면, 우리나라는 선진국 시장에서 배제될 수 있습니다.

설령, 정말로 월 100만 원만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안정된 직장을 가진 고소득자에 한정될 것입니다. 월 100만 원은 작은 돈이 아닙니다. 1년이면 1200만 원입니다. 가뜩이나 사교육비에 치이고, 사적인 부조금에 치이고, 주택과 학비 대출에 치이는 우리나라 가정 중에서, 이정도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요? 국세청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에 결혼한 신혼부부의 평균 연간소득은 약 6000만 원입니다. 최소 7000만 원 이상의 대출을 갚아야 하는 신혼부부는 전체의 72%에 달합니다.3)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매년 1000만 원에 달하는 양육비를 감당하고 있는데, 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모르겠습니다.4)

일부 고소득자에게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기회를 준다고 해서, 저출산 문제에 도움된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주로 출산율을 낮추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현상은 개인주의의 확산과 소득 불안정, 너무 높은 주택 가격, 여성의 경력 단절, 과도한 육아비와 노동시간입니다. 이렇게 문제가 복잡한데, 특정 계층이 자기 책임으로 가사를 위탁할 기회를 갖게 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게다가, 내국인이 경제적 불안을 겪는 와중에 값싼 외국인 노동자가 유입된다면, 이는 가뜩이나 활활 불타고 있는 사회 갈등에 가스통을 던지는 꼴이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 앞서가는 유럽은 1990년대부터 외국인 유입 탓에 심각한 사회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전유럽에서 반이민 정당이 지지받고 있고, 이탈리아와 스웨덴 등에서는 반이민 정당이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관용적이라는 유럽도 이 모양인데, 일상적으로 인종차별을 일삼는 우리나라가 별 문제 없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볼 이유가 없습니다. 감히 예상컨데,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성폭행과 갑질 문제 탓에 우리나라의 국격만 더 떨어질 것입니다.

가뜩이나 가혹한 노동환경을 더 가혹하게 만드느니, 차라리 프랑스처럼 정부가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비용을 지원하고, 공공보육시설을 확충하는 편이 여러모로 선순환을 기대하기 좋을 것입니다.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하겠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국민부담률도, 정부 부채도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수준입니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고작 가사도우미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 가볍지 않습니다. 보다 담대한 대안이 필요합니다.

조정훈 안은 결국 개인에게 육아부담을 짊어지게 하는 제도입니다. 보육 부담을 급진적으로 사회화해도 모자를 판에, 조정훈 의원은 각자가 능력 껏 가사도우미를 구해서 보육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한 셈입니다. 이는 부실한 사회안전망을 외면하고, 헌법에 명시된 사회국가원리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조정훈 의원과 시대전환은 실용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기본소득제를 포함해서 최근 제안하는 정책들을 보면 자유방임 보수주의에 치우쳐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시대전환의 정체성을 다시 평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자료

1. 김보미, 값싼 외국인 가사 도우미? 국내 실정 비켜간 ‘저출생 해법’, 경향신문, 2022년 10월 3일.

2. 최서리, 싱가포르 정부의 이주가사노동자 도입과 관리방식, 이슈브리프 No. 2017-04, IOM이민정책연구원.

3. 2020년 신혼부부통계, 국세청.

4. 이소영 등,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 복지 실태조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8, 2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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