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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Apr 07. 2023

권리는 공짜가 아닙니다.

생각보다 비쌉니다.

인권 운동가를 항상 경계하고 있습니다. 인권 담론이 '과장된 수사'¹라는 점은 둘째치고, 인권 운동가라는 사람들은 내가 받을 이익만 이야기할 뿐, 남이 감당할 부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인권 운동가는 자신이 나열하는 권리 목록이 얼마나 비싼가에 대해서는 절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저 약자의 처지를 선정적으로 보여주며 어떤 권리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만 선전할 뿐입니다. 현대 인권 담론은 추가 비용을 숨기고 있는 이면 계약서인 셈입니다.

권리는 공짜가 아닙니다. 개인이 집을 가질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개인이 어느 집을 가졌는지 등록할 의무를 소유자에게 강제해야 하고, 남의 집을 침범하지 않을 의무를 모두에게 강제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는 자연히 비용이 발생합니다. 정부는 관공서를 짓고 공무원을 고용할 비용이 있어야 의무를 강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모든 권리는 정부가 비용을 들여서 누군가에게 의무를 강제할 때 비로소 실현됩니다.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덴마크처럼 공적 영역에 헌신하는 사회는 소득의 절반 정도를 부담합니다. 물론, 소득 수준에 따라서 개인이 실제로 부담하는 비율은 다를 것입니다. 소득의 절반 정도를 부담하는 만큼, 덴마크 사람들은 가장 많은 권리를 누립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덴마크가 굉장히 생산적이고 균질하고 협력적인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덴마크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가 공적인 일에 소득의 3분의 1도 지출하지 않습니다. 사회가 얼마나 부유한지, 또 얼마나 결속되어 있는지에 따라서, 감당할 수 있는 비용 수준이 달라집니다.

권리는 개인의 소득 뿐만 아니라 절제도 요구합니다. 정부가 의무를 강제한다는 말은 개인이 그 의무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최소한의 명예를 보장받을 권리는 모두가 상대를 모욕하고 싶어도 참을 때 실현됩니다. 정부가 법을 만든다고 해서 곧바로 사람의 행동이 교정되지는 않습니다. 개인이 법을 존중하고 법에 따르기 위해 노력할 때, 비로소 법이 의미 있습니다. 애초에 많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비용을 감당하는 일부터가 개인의 경제적 노력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권리는 징병제처럼 사람에게 어떤 일을 강제하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권리는 한정된 자원과 노력을 나누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지극히 정치적인 일입니다. 누구에게 얼만큼 부담을 부과해서 누구에게 얼만큼 이익을 나눠줄지 논의한 뒤에야, 비로소 실속 있는 권리 담론이 만들어 집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충분히 다루는 인권 운동가는 많지 않습니다. 많은 인권 운동가들이 그저 누군가가 받아야 할 이익 목록만 나열할 뿐, 그 이익을 주기 위해 누가 어떤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허울 좋은 말로 얼버무릴 뿐입니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전가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여러 인권 운동가의 주장은 공정위로부터 단속받아도 할 말이 없는 과대 광고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권 운동가들이 부담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아 하는 이유를 아주 모르는 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기적인 이익보다 단기적인 손해에 민감합니다. 누군가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모두가 어떤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지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우리나라처럼 각자도생에 익숙한 사회에서는 권리를 주장할 때마다 반발을 살 것입니다. 덴마크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많은 권리는 부유한 경제와 두터운 연대로 실현됩니다. 우리나라는 꽤나 부유하지만 연대 의식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담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는 것은 사기 행각이나 다름 없습니다. 정말 실현 가능한지를 따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책임은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만 성립합니다. 손이 없는 사람에게 총을 들고 나가 싸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부당한 것처럼,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요구하는 권리는 아무리 그 권리가 절박한 사람이 있더라도 부당합니다. 따라서, 경제와 연대 의식을 다루지 않는 인권 운동가에게는 주목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석.

1. 인권은 법이 보장하는 권리인 기본권과 다른 개념입니다. 모든 권리는 정부가 법으로 강제할 때 실현되는데, 세상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인권 담론에는 세상 모든 사람을 구속할 수 있는 정부가 없습니다. 따라서 인권은 각국이 기본권으로 실현하기 전까지는 허상입니다.

"자연권은 순전한 헛소리다. 자연적이고 불가침한 권리는 수사적 헛소리 - 과장된 헛소리다." - 제레미 벤담

2.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국민부담률'과 'GDP 대비 일반정부 지출 비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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