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완 Apr 14. 2023

경쟁하는 네 가지 대안

기본소득, 부의소득세, 근로장려세제, 안심소득

1. 역사 있는 복지제도, 사회보험.


복지국가는 사회보험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과 고용보험이 우리 일상에 가장 가까운 사회보험입니다. 민간보험과 사회보험은 재원 확보 방식과 수급자의 범위가 다릅니다. 사회보험은 대체로 모든 국민을 의무적으로 가입시키고 세금 지원을 받아서 재원을 확보합니다. 사회보험은 국민 대다수가 서로 불행의 무게를 분담하게 합니다.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하게 하면, 사회보험은 소득을 재분배하는 기능도 맡을 수 있습니다. 운용 원리는 민간보험과 비슷하지만, 그 혜택은 매우 포괄적입니다.


1960년대까지, 유럽 복지국가는 노동자를 위한 사회보험을 주로 활용했습니다. 1880년대부터 사회보험을 도입한 독일은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의료보험을 처음 도입했습니다. 1910년대 영국은 노동자를 의무적으로 가입시키는 실업보험을 도입했습니다. 이후 노령연금이나 산재보험 등 흔히 우리가 아는 사회보험들이 유럽 각지에 자리잡았습니다. 물론 어떤 제도에 비중을 두는가에서 나라마다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독일과 영국이 튼튼한 의료보험을 자랑했다면, 이탈리아는 노령연금에 많은 예산을 집중했습니다.1)


사회보험 위주의 복지국가는 나름 잘 작동했습니다. 1960년대까지, 대부분의 노동자는 고용 기간과 소득을 보장받는 정규직이었습니다. 경제성장률도 높아서, 임금도 빠르게 상승했습니다. 각국 정부는 요즘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높은 세금과 보험료를 거둬서 튼튼한 사회보험을 지탱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보험을 통해 위험 부담을 나누기만 해도, 국민 대다수의 생활을 안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2. 사회보험의 한계, 경쟁하는 대안들.


1970년대부터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스테그플레이션과 오일쇼크가 전세계를 덮쳤습니다. 주요국가들에서 물가가 상승하고 성장률이 하락했습니다. 기존의 국가 개입 정책이 경제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받으면서, 세계화, 시장 자유화 정책이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시장 자유의 흐름에 떠밀려서, 정부의 개입 능력과 노동자의 지위가 위태로워졌습니다. 각국 정부는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감세 경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고, 단기 노동자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났습니다. 각국은 역사적으로 유래 없는 유동성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새로운 상황에서, 사회보험은 예전 규모를 지키는 데에도 벅찼습니다. 무엇보다, 격동하는 시장으로부터 사람들을 충분히 보호할 수 없었습니다. 보험은 어디까지나 위험이 발생할 때에만 도움을 주는 제도입니다. 노령연금은 나이가 들어야 비로소 혜택을 주고, 실업급여는 일자리가 있었던 사람에게만 혜택을 줍니다. 의료보험도 가입자가 아플 때에만 병원비를 내줍니다. 가혹한 경쟁에 떠밀려서 일자리가 없거나 충분한 소득을 얻지 못하는 사람에게, 기존 사회보험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습니다. 사회보험에 주로 의존하던 전통 복지국가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사회보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복지국가들에서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함께 여러 소득지원 정책이 논의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영국에서는 1990년대에 '근로장려세제'가 도입되었습니다.2) 근로장려세제는 '부의소득세'를 도입하기 쉽게 다듬는 과정에서 우연히 등장한 제도였습니다. 유럽에서는 '기본소득'이 부상했습니다. 스위스는 2016년에 기본소득 찬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열었고, 핀란드는 2017년부터 19년까지 일부 지역에서 기본소득을 실험했습니다. 미국에서도 몇몇 대통령 후보가 기본소득을 공약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소득과 함께 '안심소득'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이 진보 담론으로 여겨지는 바람에, 보수 진영이 부의소득세를 응용한 안심소득을 대안으로 내세운 것입니다. 거대양당은 각각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2008년에 도입된 근로장려세제는 별다른 대안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기본소득과 부의소득세, 근로장려세제와 안심소득, 이 네 가지 선택지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대상으로 얼마를 지급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지, 어떤 선택지가 더 쓸모 있고 지속가능한지 다룹니다. 무슨 논의든, 시작 단계에서 단어를 어떻게 쓸지 합의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경쟁하는 네 가지 제도는 사회보험과 다른 원리로 소득을 지급한다는 점에서 같지만, 혜택받는 대상과 지원하는 소득 범위 면에서 다릅니다. 그 차이를 명확히 다루지 않으면, 논의는 수렁에 빠질 것입니다.


3. 기본소득, '모두의 생존을 보장하자'.


기본소득은 조금 혼란스럽게 사용되는 말입니다. 경기도는 만24세 청년에게 한시적으로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제도를 '청년 기본소득'이라고 부릅니다. 경기도는 지역 농민을 대상으로 하는 '농민 기본소득'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기본소득당이 전국민에게 매월 60만 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공약했습니다. 같은 해,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다른 정당 국회의원 14명과 함께 모든 국민에게 한 달에 30만 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법을 발의했습니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정부가 취업 여부과 상관 없이 일정 소득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폭넓게 지칭합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기본소득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정의하는, 엄격한 의미의 기본소득입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기본소득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체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입니다."3)


여기서 핵심은 '모든 구성원'과 '조건 없이'입니다. 대부분의 민주국가가 모든 시민에게 소득, 학력 수준과 상관 없이 평등하게 투표권을 주듯이, 기본소득 지지자는 소득도 시민권의 일부로 보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회보험은 위기에 처했을 때 소득을 지원해 주고, 근로장려세제는 소득이 적은 납세자에게 차등적으로 소득을 지원하지만, 기본소득은 위험하든 말든, 취업하든 말든, 가난하든 말든, 모든 개인에게 정기적으로 똑같은 소득을 지급합니다. 이런 보편성 또는 무차별성이 기본소득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소득이 진보 담론으로 통하지만, 기본소득은 복지국가를 강화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주로 좌파는 기존 복지제도를 유지하되, 기본소득으로 부를 재분배하려 합니다. 사회보험과 교육지원 등 기존 복지제도가 초래할 수 밖에 없는 사각지대를 기본소득으로 메우려는 것입니다. 보다 급진적인 좌파는 아예 취업 활동 자체가 선택 사항이 될 수 있도록, 생존 가능한 수준의 현금을 지급하자고 주장합니다. 어차피 기계가 발달하면서 완전고용이 갈수록 난망해질 테니,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적절한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파는 기존 복지국가를 대체하기 위해 기본소득을 지지합니다. 시장 자유를 우선시하는 우파는 복지국가가 경제활동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비판해 왔습니다. 복지국가에서는 거대한 관료조직이 경제생활에 깊게 개입합니다. 시장 우파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비용과 규제가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관료조직의 경제 개입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빈곤에 대응하기 위해, 시장 우파는 기존 복지제도를 폐지하고 기본소득 하나만 남기려 합니다. 이처럼, 기본소득이 꼭 진보 담론이라는 법은 없습니다. 설계하기에 따라서, 기본소득은 정부 규모를 줄이고 시장 자유를 극대화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기본소득은 '모든 구성원에게', '무조건', '동등한' 소득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모든 제도입니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목적에 따라서, 지급하는 소득의 양이 달라질 것입니다.


4. 부의소득세, '빈곤에 집중하자'.


부의소득세, 또는 마이너스 소득세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1960년대에 제안한 정책입니다.4) 세금을 걷는 것이 아니라, 고소득자에게 걷은 세금을 나눠주는 제도이기 때문에 '마이너스' 소득세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프리드먼은 소득이 일정 기준선 이하인 사람에게 기준선보다 부족한 부분을 지급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정부가 저소득층에게 소득을 보장하되, 소득이 높아질수록 지원액을 삭감하자는 것입니다. 모든 개인에게 똑같은 소득을 지급하는 기본소득과 다르게, 부의소득세는 차등적으로 소득을 지급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보통 유럽에서는 상대적 빈곤선을 중위소득의 60% 미만으로 잡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2023년 기준으로 월 124만 원 정도입니다. 만약 정부가 월 124만 원 미만을 기준선으로 삼고 부의소득세를 도입한다면, 한 달에 60만 원만 버는 사람은 64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100만 원만 버는 사람은 24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는 부족한 부분을 100% 지원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부의소득세율을 50%로 설정한다면, 받는 금액은 각각 32만 원과 12만 원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프리드먼은 부의소득세로 빈곤을 퇴치하되, 다른 복지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낙회 전 관세청장과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등이 공동 저서 '경제정책 어젠다 2022'에서 부의소득세 도입을 제안했습니다. 저자들은 부의소득세가 다른 제도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재분배 효과도 뚜렷하고, 다른 소득보장 제도들을 정비하는 데에 도움되고, 다른 선별 복지와 다르게 낙인 효과도 없기 때문입니다.5) 누가 제안한 것이든, 부의소득세의 핵심은 '모든 개인에게', '일정 기준선보다 부족한 부분을' 지급하는 것입니다.


비록 부의소득세를 원안 그대로 실현한 나라는 아직 없지만, 부의소득세는 여러 제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에서는 부의소득세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근로장려세제'가 나타났고, 우리나라에서는 부의소득세를 응용한 '안심소득'이 나타났습니다.


5. 근로장려세제, '근로자의 소득을 지원하자'.


근로장려세제는 1970년대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프리드먼 등 여러 경제학자가 부의소득세를 제안하면서 논쟁이 벌어졌는데, 부의소득세는 너무 많은 예산이 든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대신, 1969년 닉슨 대통령은 부의소득세와 유사한 가족지원계획(FAP)을 도입했습니다. 이후, 부의소득세에 반대하던 러셀 롱 상원의원(민주당)이 가족지원계획의 수정안을 제출했는데, 이 수정안이 1975년에 법제화되어 근로장려세제로 자리잡았습니다.6) 복지 후진국인 미국에서, 근로장려세제는 메디케이드를 제외하고 가장 큰 지출액을 자랑하는 복지제도입니다.7)


이름이 근로장려'세제'인 이유는 세액공제제도처럼 소득세 체계의 일부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자산 수준이나 경제활동 여부에 대한 조사 없이, 소득세를 걷는 과정에서 확인한 소득 정보를 근로장려세제에 고스란히 활용합니다. 덕분에 근로장려세제는 별다른 행정 비용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처음 도입될 때에, 근로장려세제는 근로자가 납부한 세금을 일부 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이후 제도가 확대되면서 단순히 걷은 세금의 일부를 돌려주는 공제제도가 아니라 소득세를 납부한 사람에게 부족한 소득을 벌충해 주는 현금복지제도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현금복지로 도입한 우리나라는 근로장려세제보다는 근로장려금이라고 부릅니다.


근로장려세제의 가장 큰 특징은 소득세를 납부하고, 소득 수준이 일정 구간 이하인 가구에 차등적으로 소득을 지원한다는 점입니다. 근로장려세제에는 점층구간과 점감구간이 있습니다. 점층구간에서는 소득이 많아질수록 지원금이 늘어납니다. 그리고 점감구간에서는 점점 지원금이 줄어듭니다. 소득이 올라갈수록 고스란히 지원금이 줄어드는 부의소득세와 다르게, 근로장려세제는 일정 구간에서는 소득이 올라갈수록 더 많이 지원해주고, 이후부터 지원금을 줄이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근로장려세제가 지급하는 지원금을 그래프로 표현하면 사다리꼴이 그려집니다.


우리나라는 2008년에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근로장려금을 도입했고, 이후 조금씩 혜택을 확대했습니다. 2019년에는 근로장려금으로 3조 8,000억 원을 지출했습니다. 근로장려금은 백만 명이 넘는 사람의 생활을 지원하는 제도이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편입니다. 정치권에서는 근로장려금 대신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을 대안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6. 안심소득, '한국식 부의소득세를 도입하자'.


안심소득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성신여대 경제학과의 박기성 교수입니다.8) 박기성 교수는 부의소득세를 응용해서 각 가구 별로 일정 기준선보다 부족한 소득을 지급하는 제도를 고안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우선 4인 가구 기준으로 연 소득 5,000만 원 미만을 기준선으로 잡습니다. 정부는 기준선에서 실제 가구소득을 뺀 나머지 부분의 40%를 지원합니다. 만약 가구소득이 3000만 원인 경우, 정부로부터 800만 원(나머지 2000만 원의 40%)를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안심소득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도입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동등한 소득을 지급하는 기본소득과 다르게, 안심소득은 저소득 가구에 차등적으로 소득을 지급합니다. 그만큼, 예산이 적게 듭니다. 근로장려금이나 기초생활보장제도처럼 혜택이 겹치는 현금 복지를 안심소득으로 통폐합한다면, 정부 예산을 크게 늘리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는 점에서, 기본 원리는 부의소득세와 같습니다.


원래 안심소득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기본소득의 대항마로 떠올랐습니다. 지금 오세훈 시장은 약 1000가구를 대상으로 안심소득을 시범 운영하고 있습니다.9) 경기도가 청년, 농민 기본소득을 운영하고 있으니, 두 지역이 정책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지역이 제도를 실험하고 있으니, 풍부한 데이터가 축적되리라 기대할 수 있어 보입니다.


7. 네 가지 선택지 비교.


정리하자면, 기본소득과 부의소득세, 근로장려세제와 안심소득, 네 제도는 지급 대상과 지급 기준이 다릅니다. 기본소득과 부의소득세는 '개인'에게 현금을 지급하고, 근로장려세제와 안심소득은 '가구'에게 지급합니다. 기본소득은 모든 개인에게 평등하게 소득을 주지만, 나머지 제도는 차등적으로 소득을 줍니다. 부의소득세와 안심소득은 기준선보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지만, 근로장려세제는 일정 구간에서는 소득이 많을수록 많은 지원금을 줍니다.


부의소득세와 근로장려세제는 기존 소득세 자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큰 행정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보건복지부 없이 국세청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기본소득은 소득세 자료 조차 필요하지 않습니다. 시범 운영 중인 안심소득은 가구 소득과 재산 수준을 따진다는 점에서 조금 더 복잡한 면이 있습니다.


설계하기에 따라서, 기본소득은 네 제도 중에서 가장 많은 예산을 요구합니다. 기본소득당이 제안하는 것처럼 모든 성인에게 월 65만 원을 지급하려면, 1년에 약 370조 원이 필요합니다. 이는 2022년 우리나라 정부 지출 604조 원의 60%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같은 해 복지예산 216조 원에 교육예산 83조 원을 더해도, 월 65만 원을 지급하는 데에 필요한 예산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부의소득세는 기본소득당이 요구하는 예산의 절반, 다른 현금복지를 통폐합하거나 지급 세율을 낮춘다면 그보다 더 적은 예산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래도 수십조 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주요국 중 복지지출이 최하위권인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상당히 부담되는 제도입니다. 수십조 원이 필요한 대안을 도입하기에는, 우리나라 복지예산이 너무 작고 비효율적입니다. 부의소득세를 유의미하게 도입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복지 개혁이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안심소득은 두 제도에 비하면 굉장히 가볍습니다. 개인 단위가 아니라 가구 단위로 소득을 지급하기 때문입니다. 근로장려금은 더 가볍습니다. 소득세를 납부하는 동시에 소득 수준이 기준선 밑에 있는 가구에게만 소득을 지급하기 때문입니다.


8. 보다 사회적인 대한민국을 위해.


처음 제정된 헌법부터 현행 열번째 헌법까지, 대한민국헌법은 명확하게 '사회국가원리'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사회국가란, 야경국가와 다르게 사회정의를 증진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적극 나서는 국가입니다.10) 흔히 우리나라의 기본질서를 자유민주주의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나라의 기본질서는 '사회적인' 자유민주주의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내에서 보장된다."

- 대한민국헌법 제1호, 제84조.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사회국가원리에 충실했는지 물으면, 선뜻 긍정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적 갈등과 조세 저항 탓에, 우리나라의 복지지출은 주요국 중 최하위 수준입니다. 복지예산은 매년 꾸준히 늘어났지만, 여전히 전국민을 변덕스런 시장의 부작용으로부터 보호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합니다. 그나마 제 기능을 하고 있는 제도가 4대보험과 근로장려금인데, 그마저도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굉장히 사회적이지 않은 곳입니다.


헌법정신에 충실하려면, 앞으로 복지규모를 더 늘려야 합니다. 물론, 규모만 마냥 늘려서는 안 됩니다. 이탈리아는 복지지출규모 면에서 상위권이지만, 연금에 예산을 집중한 탓에 사람들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전체 복지지출에서 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그만큼 다른 제도가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심지어 그 부족한 예산을 기초생활보장제도, 근로장려금, 아동수당 등 여러 제도로 흩뿌리고 있으니, 우리나라 복지체계는 여러모로 비효율적입니다. 규모를 늘리는 동시에 효율성을 개선하지 않으면, 사회국가 대한민국은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에서 다룬 네 가지 제도는 기존 복지제도의 단점을 보완해 줍니다. 효율적이고 포괄적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다른 만큼 그 효과도 다릅니다. 무엇을 고르든, 신속하고 건설적으로 논의해야 합니다. 지금도 인구밀도 높은 나라에서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마약에 손을 대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튼튼하고 지속가능한 복지제도를 마련하는 일은 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입니다. 네 가지 대안 중에 우리의 미래가 있습니다.


참고문헌.


1) 알레시나, 알베르토, 복지국가의 정치학, 전용범 옮김, 생각의 힘, 2012, 89p.


2) 국제노동브리프 2018년 8월호, 한국노동연구원.


3)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홈페이지, 2023년 4월 14일 접속.


4) 미국의 사회보장제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8, 360p.


5) 김낙회 등, 경제정책 어젠다 2022, 21세기북스, 2021, 83p.


6) 미국의 사회보장제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8, 360p.


7) 미국의 사회보장제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8, 361p.


8) 김낙회 등, 경제정책 어젠다 2022, 21세기북스, 2021, 99p.


9) 서울 안심소득 홈페이지, 2023년 4월 14일 접속.


10) 김광재, 대한민국헌법의 탄생과 기원, 윌비스, 2017, 194p.

작가의 이전글 예수가 부활하지 않은 기독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