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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May 09. 2023

남 탓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명치가 묵직했습니다. 저녁 7시에서 11시까지, 드러누워서 유튜브만 봤습니다. 그거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쌓아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직업도 없고, 저축도 없고, 뚜렷한 계획도 없었습니다. 올해로 서른인데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목적을 갖고 옛 일을 되새겨 본 건 아니었습니다. 머리는 종종 아무 이유 없이 잡념으로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유튜브도 합세했습니다. 자기계발 영상을 잘 안 보는데, 어제는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동기부여 영상이 보였습니다. 내용은 뻔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그만큼 노력했고, 남 탓하지 않았다.' 유튜브한테 잔소리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목표에 전념하며 하루를 보낸 적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후회가 한 번 더 명치를 찔렀습니다.

유튜브가 하는 말을 그냥 납득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쁜 일이 일어날 때마다 '내 탓이오'라고 빌며 가슴을 쳐야 한다니, 지금 느끼는 아픔이 순전히 내 탓이라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합리적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집안 빚을 갚기 위해 일했고, 번 돈의 6할 이상을 고스란히 집을 위해 썼습니다. 남은 돈으로는 책을 샀습니다. 어릴 때부터 느껴 온 불안, 공허함에 맞설 때, 저자 외에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다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 죽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았습니다. 이만하면 남 탓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까요? 이만하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요?

인터넷에는 남 탓을 혐오하고 노력을 숭배하는 풍조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취직에 실패한 사람은 노력하지 않았다는 억측이 멋진 말로 통하고 있습니다.

이런 풍조가 생긴 원리를 모르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임승차자를 혐오하기 마련입니다. 드러누워서 투덜거리기만 하는 것은 무임승차 시도나 다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상황보다는 사람을 탓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인지과학에서 오래 전부터 받아들여진 인지 편향입니다. 게다가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사람은 관용을 잃습니다. 이런 요소들이 뒤섞여서 억측을 숭배하는 풍조를 낳았을 것입니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가슴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정말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충분한 근거 없이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법입니다. 내가 본 것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법입니다. 억측 숭배자는 합리적으로 타인의 처지를 분석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심리나 행동 원리에 대해 공부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사소한 성공담, 또는 유명인의 검증 못할 일화를 전제로 상대를 모욕할 뿐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나 혼자 주의한다고 해서 무사히 고속도로를 빠져나올 수는 없습니다. 내 뒤, 내 옆에서 운전하는 사람이 무책임하게 술을 마셨다면, 내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도로 위에서 내 운명은 타인에게 달려 있는 셈입니다. 모든 운전자는 서로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고, 따라서 누구도 혼자 힘으로 안전하게 운전할 수 없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아니 대체로, 가난과 실업은 남의 책임입니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고르는가에 따라서, 투자자들이 어떤 선택을 내리는가에 따라서, 경제대국이 어떤 상황인가에 따라서,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이 달라집니다. 부모가 얼마나 돈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서, 얼마나 세심하게 자녀의 특성을 살피는가에 따라서, 개인의 자기통제력이 달라집니다. 정부의 잘못된 선택 탓에 경제 전반이 위태로워졌다면, 부모의 잘못된 개입 탓에 어릴 때 공부에 집중하는 법이 자리잡지 못했다면, 가난과 실업을 개인만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남을 탓하며 다 내려놓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남이 내 문제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나도 남의 문제에 책임이 있습니다. 남 탓과 드러눕기는 엄연히 다르고, 원인이 남에게 있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합리적으로 남 탓을 할 수 있어야 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은 문제 해결의 첫 단계입니다. 내 탓이 아닌데 내 탓만 한다면, 효과적으로 노력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 탓이 아닌 일을 내 노력만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셈입니다. 기적 같은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극소수의 성공 사례는 대다수의 실패 사례를 덮을 수 없습니다.

남 탓이 언제나 나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남을 탓해야 힘을 모을 수 있습니다. 함께 행동해야 더 깊은 원인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남 탓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닥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도 간혹 돈을 잘 버는 걸 보면 세상은 그닥 공정하지 않습니다. 공정하지 않은 게임에서 성적이 낮다고 해서 자신만 탓하는 건 바보 같은 짓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책임지고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행은 내 탓이 아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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