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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Nov 30. 2022

안전운임제 갈등의 이면에는 정부가 있습니다.

제로섬 게임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정부 뿐입니다.

물류회사와 화물연대 간의 제로섬 게임이 격해졌습니다. 양측 모두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성장률은 낮아지고 물가는 올라가는 상황이라, 양측은 상대방의 이익을 훼손하지 않고서는 각자의 생활수준과 생존수단을 지키기 힘듭니다. 부가가치가 풍족하게 창출되고 물가가 안정된 상황이었다면 양측 다 이익을 보는 상향 평준화를 노려 볼 수 있었을 테지만, 한동안은 그럴 수 없습니다. 심지어 금리까지 폭등하고 있으니, 양측 모두 경제적 불안감을 더 크게 느낄 것입니다. 이번 안전운임제 갈등은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줄다리기입니다.


이번 줄다리기에서, 정부는 심판이 아니라 물류회사 측 선수를 자임했습니다. '국가경제 안정'을 명분으로 업무개시명령까지 발동했습니다. 양측이 동등하게 양보하도록 중재하기 보다, 한 쪽 입장을 거든 것입니다. 물론, 화물연대의 요구가 정말 합당한지에 대해서는 보다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설령 요구가 합당하더라도, 다른 화물 기사까지 위협하는 화물연대의 파업 방식은 충분히 과격합니다. 정부는 위법 행위를 단호히 진압해야 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안전운임제 갈등은 정부의 방임 탓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부가 증세나 확장 재정을 통해서 한시적으로라도 소득을 보조하고 경제적 불안감을 덜어주고, 노사가 서로 양보하도록 중재했더라면, 국가경제를 위해 고통을 분담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중앙은행의 판단에만 맡기고 있습니다. 심지어 재정건전성을 지킨다며 약자를 위한 예산을 삭감하고 있습니다. 이는 밀턴 프리드먼이 주창한 작은 정부, 통화주의 기조를 충실히 따르는 모양새입니다. 시장이 알아서 회복되기를 기다리기에는 주변 상황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불안에 빠진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정부 뿐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사람들이 알아서 견디도록 방임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니, 각자는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리한 수를 던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정부의 이념 편향적인 태도가 이번 안전운임제 갈등을 더 격하게 키운 것입니다.


정부가 안전망에도 신경썼더라면, 안전운임제 같은 무리한 정책은 설득력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기업이 임금을 인상하고 정부가 소득을 보조해 주고 있습니다. 사회민주당 정부는 숙원이던 시민배당제(아동수당을 보다 확대한 정책)도 도입했습니다. 정부가 노사와 발맞추며 안전망을 구축한 덕에, 독일은 우리처럼 큰 혼란을 겪지는 않고 있습니다. 성장률 하락과 물가 급등, 금리 인상이라는 조건은 유사하지만, 정부의 태도가 우리나라와 너무 다릅니다.


사실상 또 다른 기득권이 된 노동조합을 견제하는 일은 물론 필요합니다.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언제나 약자이고 정의의 사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악덕 기업만큼 악랄한 세력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조합을 견제한다고 해서 나머지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입장을 꺾지 않고 정치적인 주장만 반복하는 노동조합은 큰 문제지만, 만악의 근원이 아닙니다. 정부는 노동조합과 싸우는 일에만 전념하기 보다, 시장에서 내쳐질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지금처럼 모두가 위험할 때에, 작은 정부가 설자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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