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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화 Sep 19. 2023

요가에서 배운 인생기술

1000명의 어린이들과 보낸 이틀

나는 프리랜서 작가이다. 프리랜서, 떼 돈을 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투잡을 뛰어야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글쓰기로 월 1000만원을 벌었단 사람의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하나 나에겐 먼 이야기이다. 수입이 일정치 않아 일일 아르바이트가 생기면 달려가는 편이다. 지금은 섬에 살고 있는데 아쉽게도 아르바이트 자리가 마땅치는 않다. 간혹 일일 알바 공고가 올라오면 지원한다. 업무 확정이 나면 죽어있던 사회 감각을 흔들어 깨워주어야 한다. 콩닥콩닥 걱정부터 앞선다. 지난봄엔 아찔하고도 달콤한 돈을 벌었다.


초등학교 때 과학축제를 경험해 보셨는가 모르겠다. 운동장 혹은 체육관에서 진행되는 과학체험으로 어린이들에겐 몇 교시를 빼먹을 수 있는 꿀 같은(?) 시간이다. 내가 맡은 업무는 체험 부스 하나를 통째로 운영해야 하는 과학 실험 선생님이었다. 어린이 경험이 적은 내게 전교생을 만나야 하는 이틀의 여정은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일이다. 아이들의 갑툭튀 질문, 돌발상황 솔직히 말하면 매우 겁났다. 하지만 투잡 프리랜서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었으니...


그러면서도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어린이들 기억엔 며칠만 지나도 내가 없겠지만 함께 했던 시간이 조금이나마 남길 바랐다. 내가 맡은 주제는 부력. 흐려진 나의 과학 지식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부력을 공부하고 정리하여 1학년부터 6학년에 맡게 설명을 준비했다. 그런데 몽땅 적은 종이에 물 엎어진 듯 어린이들을 만나자 머리가 얼룩덜룩해졌다. 준비해 온 순서가 흐려지고 말은 마구잡이로 나가며 호흡은 달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아이들은 1학년이었다. 모여 앉아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햇병아리 같았달까. 아기자기한 손, 올망졸망한 입술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그러한 시간도 잠시 내가 진행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하나 둘 떠들기 시작했다. 설명도 끝나기 전에 실험도구를 만지고, 옆자리 아이와 실랑이가 나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대로 말리고 말았다. 말이 빨라지고 숨이 차는 게 아닌가. 심지어 설명하다가 삑사리가 나기도 했다. 앞에서 지켜보는 담임 선생님의 눈을 쳐다볼 수 없었다. 첫 반, 두 번째 반, 세 번째 반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갑자기 오늘 새벽에 만난 요가 선생님이 생각나는 게 아니겠는가. 선생님은 수련 시간에 호흡을 바라보라는 말씀을 하신다. 호흡을 조절하면 안 되던 동작이 되고, 이리저리 도망간 마음을 내 안으로 가져올 수 있다. 이 방법은 삶에 그대로 녹아난다. 가만 느껴보니 내 호흡이 지나치게 빨랐다. 아이들보다도 분주하게 숨을 쉬고 있었으므로. 나는 다시 안정적인 리듬을 찾아야 했다. 숨을 깊게 마시고 천천히 내쉬기. 마시고 내쉬는 숨에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주 재미있게도 그 뒤로부터 아이들과 호흡을 맞추며 즐기기 시작했다. 손을 반짝반짝 흔들며 인사를 나누고, 박수 세 번 짝짝짝을 외치며 어린이들의 시선을 모았다. 코로 마시고 입으로 내쉬며 부력이 무엇인지 아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질문을 던지니 어린이들의 입이 무척 간지러워 보였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말해버린 아이도 있었다. 


다음 날 고학년 실험 시간은 오히려 반대였다. 병아리 같은 아이들과 다르게 학교 생활 좀 해보았다고 무게감이 장난 아니었다. 적막에 자칫 잘못하면 뻘쭘하고 지루한 시간이 될 게 뻔하였다. 이번엔 아이들의 호흡을 끌어내 보았다. 짧게 마시고 내쉬는 숨에 힘을 실어 놀이공원 온 듯 분위기를 띄웠다. "아기 때 목욕탕 가서 바구니 겹쳐 놓고 수영해 본 사람!" 외치자 자기 이야기인지 여기저기 웃음이 터졌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약 40개 반 아이들을 만났더니 진이 다 빠져버렸다. '휴우 드디어 끝났다!' 마무리 정리를 하는데 담당자 선생님께서 툭 하고 한 마디를 던지시는 게 아닌가. "선생님, 학교 쌤들 칭찬이 장난 아니던데? 실력 좋다고 말이야." "아이구 감사합니다." 마음이 간질~간질 뿌듯함에 취하고야 말았다. 어린이들의 미소를 잔뜩 보고 칭찬까지 받고 오다니! 꿩 먹고 알 먹고 내게 모자람이 없는 시간이었다. 겁났던 마음이 몽글몽글한 경험으로 남을 수 있던 건 아득해질 때마다 호흡을 조절한 덕이었다. 그 정신없는 때에 요가 선생님 얼굴이 생각난 건 나도 모르게 내게 필요한 것을 찾았던 게 아닐까?


삶이 뒤죽박죽일 때면
호흡을 바라본다.
마시고 내쉬고 그리고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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