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하시다고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내가 얼마나 예민한지 설명하려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필요하다. 혹시 영화를 보고 가오나시처럼 토해 보았는가. 나는 토해 봤다.
나무 장에 들어있던 2000년대 학교 티비, 담임선생님께서 영화를 하나 틀어주셨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수업 시간에 보는 영화만큼 특별한 게 없다. 재미있든 없든 수업을 하지 않는 게 선물이었으니깐. 심지어 그날은 몰입도 최강 영화였다. 반 아이들 모두 숨 죽이게 만들었으니깐. 우리 반 아이들은 '하쿠, 하쿠!'를 외치며 목욕탕을 뛰어다니는 여자 아이와 가마할아범, 화려한 온천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냥 즐기지 못한 사람이 있었으니 가오나시의 출현이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몸뚱이가 꿀렁꿀렁해진 가오나시를 보며 몸이 바싹 굳어버렸다. 요괴들의 대접을 받으며 음식을 입에 우걱우걱 넣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달까. 없던 앞머리는 왜 자라났는지 휘날릴 때마다 거북했다. 그다음 장면은 나를 아주 세게 흔들었다. 센이 준 경단을 먹고 벽에 부딪히며 모든 것을 토해버리는 가오나시가 어찌나 공포스럽던지. 그걸 보고 온 날 밤, 기어코 병이 나고 말았다.
가오나시가 도통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도 신경 썼기 때문인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앓다가 겨우 잠들었는데 킁킁 어디선가 도넛 냄새가 나는 게 아닌가. 속이 울렁거려 화장실로 갔다. 아빠가 퇴근하고 사온 도넛이었다. 가오나시 음식 먹는 것에 질렸는지 도넛 냄새를 맡자마자 토를 하고 말았다. 힘 다 빠진 가오나시가 '아, 아.'를 외치 듯 진이 다 빠진 난 엄마를 불렀다.
몇 날며칠 영화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엄마가 한의원까지 데려가주었다. "그 제목 뭐였니?" 한의사 선생님이 물으셨다. "제목은 모르겠어요." 나를 이토록 괴롭히는 영화의 제목을 모르다니. 어찌나 알려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영화 제목을 알면 지금 내 마음을 해결해 줄 답이 나올 수도 있으니깐. 결국 기억나지 않았다. 딱히 처방이랄 것 없이 돌아가려는데 선생님의 한마디를 흘리셨다. "아이가 예민한 편이네요."
우리 반에 나처럼 토한 아이가 있었을까? 아마 있어도 부끄러워 말하지 못했겠지. 만약 있다면 그 아이는 나처럼 예민했을 테다. 나는 태생이 예민한 사람이다. 아기 땐 하도 울어 엄마 아빠가 잠을 못 잤고, 분유는 먹으면 곧장 게워냈다. 누가 예쁘다고 쳐다보면 우엥 하고 울어버렸으니 예민하다는 단어는 나를 설명하는 어떤 것보다 알맞다.
이 예민함은 커서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나의 예민함을 숨기며 살아왔다. 나에게 예민함은 영화를 보고 토하거나, 빛 소리 냄새가 거슬릴 때 감정이 격해지거나, 누가 툭 하고 던진 말에 쉽게 상처받거나, 사람 손이 많이 닿는 것을 만지지 못하거나 들켜서 좋을 게 없는 일들이다. 이런 모습이 들통나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뻔하였다. 예민함을 꽁꽁 가두다 보니 어느 날엔 속병이 나기도 했다. 내 마음을 건드리고 간 사람에게 한 마디를 못 했으니깐. 그 사람이 스치고 간 자리엔 폭풍이 몰아치곤 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사람 만나는 것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사람을 만나면 충전이 필요하고,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으므로 예민해도 괜찮은 시간이랄까. 그런데 최근에 보물 같은 책을 만났다. 이 책을 소개해주고 싶다. 이미로 작가님의 '예민함이라는 선물'이다.
"격정적인 성향인 당신에게는 세상의 게임 체인저가 될 진정한 잠재력이 있다. 당신의 지적 호기심은 기존의 체계에 의문을 품고, 그런 체계를 평가하고, 철저히 검토하게 만든다. 당신의 예민함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고 세상에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당신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여러 방면에서 깊은 지식을 갖추게 만든다. (중략) 당신은 자신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위해서 이 재능을 활용할 책임을 부여받은 것이다." -예민함이라는 선물, p. 48-
"예민한 게 나쁜 것이 아니라고?" 이십여 년 간 나의 예민함을 단 한 번도 안아주지 못했는데 오히려 재능이다라고 말해주는 책이 있다니 이 자체로 선물이었다. 나의 예민함이 긍정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예민한 것이 꼭 나쁜 게 아니라면 이렇게 꽁꽁 싸매고 튀어나오지 못하게 막아야 할까 떠올려본다. 그리고 나의 예민함을 바로 세워본다. 나는 나를 꽤나 깊게 이해하고 있고,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면 가슴 깊이 아낀다. 우리 가족이 무너지지 않게 웃음꽃을 피웠으며, 면허를 따기 위해 클러치까지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지만 결국 해낸다. 그 모든 게 예민함의 다른 모습이라면 꼭 창피해야만 할 것은 아니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게 나의 예민함을 조금씩 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