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화 Sep 19. 2023

엄마의 갱년기 그리고 강아지

너를 만난 건 내 인생에 행운이야

엄마의 우울이 끊이질 않았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오르다가 땀이 줄줄 난다며 하소연을 한다. 엄마는 화를 내다가 울다가 웃다가 종 잡을 수 없는 날씨와 같았다. 갱년기로 우리 집 비상경보가 울렸다. K 장녀인 나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는다. 어떻게든 엄마의 갱년기를 낫게 해주고 싶었다.


“엄마 요즘 우울해 보여. 집에만 있어서 그런가 봐. 운동이나 뭐 배우고 싶은 것 있어?”

“없어. 괜찮으니깐 신경 쓰지 마.” 


음... 이게 아닌데. 분명 나는 엄마 아빠의 다툼을 해결하는. 야단맞는 동생을 구해주는 우리 집 슈퍼히어로인데 내 어떤 말도 통하지가 않다니. 나의 일생일대 우리 집 해결사로서 큰 문제에 봉착했다.


엄마의 하루도 매일 그저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함께 텔레비전에서 하얀 발바리가 뛰어다니는 장면을 본 날이었다. 


“어머, 쟤네 좀 봐봐. 귀여워라.” 


난 강아지가 아니라 엄마를 보았다. 엄마의 눈빛이 어찌나 생기가 돌던지. 두 눈에 하트 뿅뿅 달렸다.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미소에 나도 행복해졌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지나가는 강아지들만 보면 눈을 떼지 못했다. 이 정도로 강아지를 좋아했던가. 꽁꽁 움츠러드는 어느 한 겨울날이었다. 엄마가 비장한 얼굴로 동생과 나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 강아지 키울까?”  

"에엥?"


내 나이 10살 무렵 , 강아지 키우고 싶다고 그렇게 졸랐었다. 한치도 물러섬이 없는 엄마, 집 바닥에 드러누워 땡깡부리던 나. 서로 감정이 상한 후에야 마지못해 포기하곤 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강아지라니. 사실 책임의 무게를 짐작할 나이가 된 만큼 나에게 강아지는 어린 날의 바람 정도였다. 강아지에게 들어갈 비용, 시간과 노력, 이별에 대한 두려움까지 함께 할 이유보다 함께 하지 못할 이유들이 명확했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말은 어린 날 나의 소망을 다시금 흔들어 놓았다.


‘우리가 정말 강아지를 키울 수 있을까?’ 


나의 어린 시절엔 우리 가족조차 제대로 먹고살기 어려웠으므로 강아지는 언감생심이었다. 다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적어도 내가 강아지 한 마리는 책임질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하곤 했다. 무엇보다 이것저것 다 싫은 갱년기의 엄마가 딱 좋다고 말한 게 강아지라니 그럼 내 답은 정해졌다. 


“좋아! 우리도 강아지 키우자.”


포니와 함께 한 5년, 반려동물과 산다는 것이 신중해야 하는 문제임을 몸소 알게 되었다. 정말 키우고 싶다면 데려오는 과정부터 키우는 방법을 알아보고, 실질적인 금액 등 현실적인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 고백하자면 5년 전의 나는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만 같아 나(의 책임감) 하나만 믿고 강아지를 데려왔다. 맞다. 그래서 눈물을 한 바가지로 흘렀던 날들이 한 둘이 아니다. 


포니를 만나기 위해 엄마, 동생과 함께 하루종일 길거리를 쏘다녔다. 행복한 강아지들이 전부일 것이라 상상한 것과 다르게 어딘가 이상한 곳들이 많았다. 어두컴컴해진 밤 마지막으로 한 곳만 더 가보기로 하였다. 신기하게도 들어서자마자 느낌이 왔다. 이곳에 우리 강아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의 눈빛을 따라간 곳엔 머리로 눈이 덮인 작고 하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암컷은 생리를 한다길래 수컷을 데려오고 싶었는데 엄마는 이미 그 강아지에게 마음을 뺏겨 버렸다. 엄마가 좋다면 모든 좋았다. 그렇게 유리 속에서 강아지가 꺼내졌다.

작가의 이전글 요가에서 배운 인생기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