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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화 Sep 21. 2023

우리 너무 안 맞는데 잘 살 수 있을까?

책임의 무게 그리고 개 밥 냄새

큰일이다. 밥그릇에 따른 사료가 너무 역하다. 


나는 냄새에 무척 민감한 사람이다. 어느 정도냐면 이 코 하나로 우리 집에 불이 날 뻔한 것을 막아냈다. 10살 무렵 엄마는 가정주부에서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 집 사정이 기운 다음 엄마가 일을 나가야 하는 것 또한 불가피해졌다. 엄마는 레스트로랑 홀에서 일을 했는데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퇴근하고 오면 꼭 맥주를 한 캔씩 마시곤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씻고 마시는 맥주가 어른들의 하루 매듭인 줄 알았다.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지친 하루 맥주도 한 캔 마셨겠다 바로 잠들면 되는데 우리 먹인다고 삼계탕을 끓였다나. 그런데 불을 올리고 냉장고에 기대어 잠들어 버렸으니...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바뀐 것이라곤 날짜 밖에 없었을 때쯤 코에 매운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내 눈이 이상한 걸까. 집이 뿌옇게 보였고 입을 벌렸더니 기침이 났다. 한 방에 다닥다닥 붙어자던 그 시절 일어나 손만 뻗으면 바로 옆에 아빠가 있었다. 


아빠 일어나 봐. 집이 이상해!


깜짝 놀란 아빠는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뒤따라간 자리엔 냄비가 활활 타고 있었다. 예민하기만 하던 내 코가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냄새를 잘 맡는 것은 좋을까? 코가 민감한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코를 살려 직업을 가질 것이 아니라면 냄새를 잘 맡는 것은 좋기보다 불편할 때가 많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강아지를 데려온 다음 날도 무척이나 막막했다.


포니에게 밥을 처음 주던 날, 강아지 밥 주기에 대한 환상이 바스스 깨져버렸다. 사료를 주면서 강아지 키운다는 것의 무게를 실감했달까. 손에 밥 냄새가 배었는데 매우 역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강아지와 산다는 것이 현실이 되면서 설렘보다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아는 것이 없다는 것도, 모든 게 처음인 것도 그 모든 걱정이 냄새를 더욱 진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포니는 무지한 상태로 데려온 강아지였다. 사료는 무엇을 줘야 하는지, 건강은 어떻게 챙겨야 하는 건지, 교육은 뭘 시켜야 하는지 몰라서 곧장 관련 서적과 인터넷을 통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안다고 해서 포니가 따라주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사회화에 애를 먹었다.


보통 강아지의 사회화 시기는 생후 3주부터 12주까지이다.  5개월부터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전에 많은 걸 접하게 해주는 게 좋다. 포니는 태어난 지 4개월이 되었다. 더 이상 사회화 교육을 미룰 수 없었다. 가장 급한 건 밖을 나가보는 것이었는데 아뿔싸 지금은 한 겨울인 게 아닌가. 저 작은 강아지가 영하의 추위를 맛보면 다시는 산책을 안 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어느 날엔 마음먹고 밖을 나가보았다. 집에서도 추위를  타는 강아지라 옷을 입히기로 했다. 그런데 옷 입는 것부터 문제였다. 포니는 새로운 것에 대한 경계심이 심한 강아지였다. 사실상 사회화에 늦은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어쩌면 모견과 일찍 떨어져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강아지는 어미와 형제들에게 사회화를 배운다고. 


포니는 겁이 많았다. 옷을 입히려고 하면 앙칼질 소리를 냈고 옷과 손을  물어버리려고 했다. 800g밖에 안 되는 강아지 옷 입히는데  동생과 나 두 사람이 달라붙었다. 겨우 입히고 동네 놀이터로 향했다. 처음으로 땅을 밟아보는 순간이었다. 


카메라 켰어? 잘 찍어 이제 내려놓는다!


나와 동생은 설렘을 가득 품은 채 안고 있던 포니를 내려놓았다. 너무 신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 어쩌나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이럴 수가 포니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더니 한참을 서 있다가 주저앉았다. 그날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엔 낯설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이 강아지는 한 달이 지나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가는 나도 지루하였고 포니도 싫어했다. 그래도 별수가  없으니 그냥 서 있다가 들어오곤 했다. 햇살 맞으며 여유롭게 산책하는 강아지와 그 주인이 우리 앞을 지나갈 때면 부러울  뿐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간식을 주머니에 넣고 나가 포니 앞에 쪼그려 앉아 손에 간식을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열 발자국 정도 걸어왔다. 갓난아기의 뒤집기를 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럴까. 무척 대견했다. 간식이 떨어지면 다시 주저앉았지만 말이다.


겨울 지나 봄, 어김없이 산책하러 나가서 서 있었다. 아주 포근한 날이었다. 포니가 더울 것 같아 입고 있던 옷을 벗겨주었다. 그랬더니 기지개를 한 번 피고는 풀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왔다 갔다 같은 자리만 돌았지만, 내게 포니의 변화는 앞으로 펼쳐질 네 개의 계절 중 가장 먼저인 봄처럼 설레었다. 


드디어 걷기 시작했지만 같은 자리만 움직인다는 것, 줄을 당기며  나와 반대 방향으로 가려하는 것,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지 않으면  엎드려 버리는 것 등 갈 길이 멀었다. 강아지와 살면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따라주지 않아도 별수가 없다는 것이다. 산책을 싫어한다고 어떤 방법이 있는 게 아니다. 그냥 계속 나가야 한다. 주저앉아 버리면 엉덩이 좀 두드려주며 걷게 하였고,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걸으면 꼬리에 힘 좀 들어가게 칭찬을 해주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났고 어느 순간 우리는 환상의 짝꿍이 되었다.


이제는 서로 줄의 미세한 움직임을 읽는다. 줄을 살짝만 움직여도 포니는 내가 어디로 가려는지 안다. 나도 포니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거나 머무르고 싶은 곳에서 기다린다. 요즘엔 옷을 두 개도 입고 추운지 발까지 들어준다. 포니에게 산책은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그런데 요즘에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응아를 먹는다. 챱챱 소리를 내며 야무지게 먹는 모습에 깜짝 놀랐지만 괜찮다. 이것 또한 장기전이고 천천히 맞춰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요즘 나는 개 밥 냄새가 역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포니를 데려오고 처음에 했던 걱정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 것처럼 냄새도 포니도 내 삶이 되었다.


서로 맞춰가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살든 동물과 사람이 살든 피해  갈 수 없다. 인내의 시간을 거쳐 서로의 모양에 맞춰지면 그다음엔  누구보다 편안한, 혼자보다 행복한 그런 존재가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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