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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화 Sep 20. 2023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그런 일들

처음 만난 그날 밤

우리는 매일 같이 까먹는다. 절대 잊지 않을 것 같은 순간도 혹은 사람도 결국 흐려지곤 한다. 그럼에도 점점 더 선명해지는 기억도 있는데 내겐 강아지를 집에 데려온 그날이 그렇다.


앞으로 이 강아지와 함께 살기로 결정! 밥 먹이는 것부터 예방접종까지 간단한 설명을 듣고 케리어, 배변판, 울타리, 밥그릇, 장난감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나는 무거운 걸 싫어해 배낭을 멜 때 어깨가 쑤시면 엄지손가락을 어깨끈 밑에 살짝 걸치고 걷는다. 그런데 그 가방도 가벼워질 때가 있으니 바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렇다. 설레는 마음에 온통 신경은 그곳으로 향하고 가방은 부웅 뜨기라도 한 듯 가벼워진다. 강아지를 데려오는 길도 그랬다. 볼과 귀가 벌겋게 얼 정도로 추웠던 그날의 찬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이 강아지가 춥고 무섭진 않을까 걱정될 뿐.


집까지 걸어서 10분 거리였는데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택시를 탔다. 집 가는 길, 과속방지턱이 이렇게 많았던가. 쿵쿵 방지턱을 넘어갈 때마다 케리어가 움직였다. 강아지가 어지러울까 봐 어찌나 걱정되던지. 집이 한참 멀게 느껴졌다.


드디어 집에 도착. 케리어 속 강아지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엄마와 나 동생 우리는 강아지를 맞이하느라 분주해졌다. 처음엔 울타리 생활이 안정감을 준다길래 집 한 구석에 놓기로 했다. 동생은 울타리 조립, 엄마는 집에서 가장 포근한 담요를 꺼내왔다. 빙 두른 울타리에 담요를 깔고 케리어를 들어 울타리 안으로 넣었다.  오직 이 강아지만을 위한 공간이 준비되었다.


그 뒤, 살며시 케리어 문을 열어보았다. 강아지가 무서워서 나오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여는데 내 걱정이 무색하게 이 강아지는 엉덩이를 흔들며 나왔다. 그리고 고개를 이리저리 좌우로 돌리며 아기곰 같은 눈으로 집 구경을 시작했다. 강아지가 놀랄까 입을 꾹 닫고 있었는데 사실 내 안엔 난리가 났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게 아닌가.


강아지는 이가 많이 가려웠는지 울타리와 집을 잘근잘근 씹었다. 가족이 된 첫 순간이었다. 익숙한 공간에 낯선 존재는 이상했고 우리가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은 믿기지 않았다. 자기 전까지 두근거려 눈을 뗄 수가 없었달까. 저 조그마한 강아지도 낯설진 않을까, 무서워 잠들지 못하면 어쩌나 불을 끄고 몰래 지켜보았다. 신기하게도 이곳이 자신의 집이라는 걸 아는 듯, 엄마 한 번 나 한 번 쳐다보더니 몸을 웅크리고 잠에 들었다. 살면서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면 내겐 2019년 1월 4일 그날이다.


기억이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은
 그게 너무 소중해서 자꾸만 생각하다보니
 그날의 향이, 온기가, 눈빛이
마음 속에 그려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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