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 쓰는 공대생 Jun 17. 2019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김영하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이 책을 덮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제목 참 잘 지었다 였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이 말은 프랑스의 소설가 프랑소와즈 사강(대표작으로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있다.)이 마약 관련 재판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라고 발언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사실 그러한 발언이 있기 전에도 나에게는 나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이어져 왔다. 마약, 술, 담배 등 개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것들을 국가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안락사나 자살 같은 개인의 생명의 끝을 개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논쟁까지. 지금도 안락사나 자살에 관련된 윤리적 관점은 명확히 결론이 나지 않은 논쟁거리이다.



이 소설에서는 자살을 도와주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 주인공이 자신의 고객들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엮어가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사실 이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을 명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공감을 못하는 것도 아닌 것이 묘한 감정이 들었다. 직접 주인공의 도움을 받아 자살을 한 유디트와 미미, 그리고 그녀들과 엮인 두 남자 C와 K의 행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어느 정도 공감은 하지만 필자가 그 상황에 처한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듯하다.)



필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인물들의 행동에 공감할 수 있었던 데에는 김영하 작가님의 문체와 소설 전반에 깔려 있는 분위기가 큰 역할을 했다. 유려하면서도 공허한 느낌의 문체와 이야기 전반에 묵직하게 깔려있는 허무주의적인 분위기가 소설 속 인물들을 인생을 그저 살아가고 있을 뿐 언제 끝나도 미련이 없는 듯한 존재들로 느끼도록 만들었고 그러한 장치는 이야기 속 인물들의 감정을 이해와 공감이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사실 필자도 소설 속 인물과 사건들에 대해 어렴풋이 감정적인 얽힘을 엿보았을 뿐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기에 소설 속 내용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는 않고 소설을 읽고 생각해 본 점들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다.



여러 종교와 소수의 몇몇 국가에서는 자살 자체를 죄로 규정한다.(우리나라에서는 범죄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다.) 과연 자살은 금기시되는 범죄인가. 그렇다면 그 윤리적 이유와 근거는 무엇일까. 인간에게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누구나 자신의 행동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목숨을 끊는 그 행동에 관한 자유를 침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생명이라는 지대한 가치에 무게를 두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억압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안락사는 어떨까. 불치병으로 삼 개월 이내에 죽을 것으로 생각되는 환자를 삼 개월 더 고통 속에서 삶을 연명하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아니면 고통을 덜어주고 스스로 자신의 끝을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답이 나오지 않는 문답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명확한 윤리적 결론이 내려지지 못하고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인간 생명의 가치와 행동의 자유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순에 대해 돌아보도록 만들었다. 장편소설이지만 그리 길지도 않고 김영하 작가님의 초기작인만큼 특유의 허무주의적인 분위기와 유려한 문체가 정제되지 않은 날것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기에 가볍게 한 시간 정도 독서를 하고 싶다면 이 책을 집어 들기를 권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7년의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