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죽음이고 가장 불확실한 것은 죽는 때이다. 그런데 나는 바로 그때를 알고 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확실하다.
빽넘버를 볼 수 있게 된 주인공, 이원영의 말이다. 이원영은 교통사고로 생사를 넘나들다 목숨을 건지게 되는데 그 이후부터 사람들의 등 뒤로 녹색 숫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빽넘버는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하나씩 줄어들고 0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은 죽게 된다. 사람들의 죽는 날을 알 수 있게 된 그의 삶은 전보다 더 행복해졌을까 불행해졌을까. 확실한 건 필자는 그러한 능력은 줘도 안 가질 것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저 앞에 어디엔가는 절벽이 있는 걸 분명히 알고 있고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이 그 절벽을 향해 달려가야만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절벽까지 도달하기에는 매우 긴 시간이 남아있을 것이라 믿고 반쯤은 머릿속에서 그 절벽의 존재를 지워버린다. 그러나 빽넘버를 볼 수 있게 된다면? 절벽은 바로 코앞에 있는 현실이 되어 버린다.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지를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 점에서 볼 때 주인공이 자신의 빽넘버를 볼 수 없다는 것은 꽤나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가끔 생각한다. 과연 내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며 인생을 끝낼 수 있을지. 되도록이면 평온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다가 가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사고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는 일이고 어쩌면 유언도 하나 못 남기고 이승을 떠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더욱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빽넘버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람들의 깊숙한 무언가를 엿본 듯한 느낌과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힌다. 오늘 죽게 될 어린아이들의 목숨을 구하려 하는 주인공에게 사신은 말한다. 네가 그 아이들을 구한다면 그 숫자만큼의 오늘 죽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라고. 그 결과 주인공은 아이들을 구하고도 커다란 죄책감에 시달린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의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필자는 스스로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고 싶지는 않다. 인생의 끝을 알게 된다면 그동안과 앞으로의 삶의 가치가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죽음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 빽넘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