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 쓰는 공대생 Jun 19. 2019

오리진(Origin)

'오리진(Origin)' / 댄 브라운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특히 이번 글에는 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이 책을 아직 안 읽으신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필자가 신간이 나올 때마다 챙겨보는 외국 작가가 딱 두 명이 있다. 댄 브라운과 더글라스 케네디. 댄 브라운의 신작인 오리진이 최근 출시되어 세네 시간 정도를 투자해 읽었다. 책 자체의 흡입력은 괜찮았지만 나사 하나 빠진 듯한 결말이 그 장점을 모두 퇴색시켜 버렸다.



책의 내용은 지금까지 나왔던 로버트 랭던 시리즈의 단계를 그대로 답습한다. 로버트 랭던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커다란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매력적인 여성 파트너와 든든한 조언자와 함께 그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이전의 로버트 랭던 시리즈들에 비해 부족한 면이 많다. 슬슬 랭던 시리즈도 마무리를 생각할 때가 된 걸까.



결말 전까지의 내용은 꽤나 흥미로웠다. 엄청난 과학자인 에드먼드 커시가 발표할 세상을 뒤흔들 과학적 사실에 대한 궁금증은 책을 끝까지 놓지 못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전작들에 비해 랭던 시리즈만이 가지던 특징이 많이 사라진 점은 매우 아쉬웠다. 랭던 시리즈를 대표하는 특징은 기호와 상징이다. 미술, 종교, 철학 전반에 걸친 기호와 상징에 대해 방대한 지식을 가진 로버트 랭던이 사건과 음모에 얽힌 기호, 상징들을 해석하고 풀이해 나가면서 점점 사건의 진상으로 다가가는 이야기 진행은 랭던 시리즈를 대표하는 장치이고 그 과정은 마치 잘 짜인 추리소설을 보는 것처럼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해 책장을 계속 넘기게 만든다. 그러나 이번 소설에서는 그러한 과정이 전작들에 비해 매우 부족하다. 인페르노에서는 단테의 작품들에 대해, 다빈치 코드에서는 레오나르도의 작품들에 대해 랭던이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퍼즐을 풀어나가듯 암호와 기호, 상징을 해독해 나가는 장면이 수도 없이 등장하고 필자는 이번에도 그런 것을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책이 끝날 때까지도 충족되지 못했다.(필자는 로버트 랭던이 가진 지적인 히어로의 면모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소설의 결말에 비하면 앞의 단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렇듯 어이없는 결말이라니. 여기저기서 가져온 기술의 발전에 관한 잡다한 이야기를 섞어놓은 듯한 결말이었고 작가의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상상력은 하나도 엿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과학이나 생물학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책을 덮자마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소리를 충격적인 반전인 것처럼 포장해서 써 놓았다. 에드먼드 커시의 발표에 대한 궁금증 하나로 끝까지 책을 넘겼던 필자는 배신감까지 느꼈다. 필자는 현재 대학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한 전공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소설의 결말은 매우, 엄청나게 터무니없는 소리이다.



첫째, 생물의 탄생을 고작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증명해냈다고 해서 그걸로 과학계가 뒤흔들릴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현재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원시 수프(지구 탄생 초기의 여러 가지 유기 및 무기 화합물들이 뒤섞인 바다를 이렇게 칭한다.)를 모델링할 수 있을 만큼 발전되지도 않았고 설령 그 정도의 분석이 가능할 정도의 컴퓨터가 존재하더라도 그 당시의 원시 수프의 요인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넣어서 모델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원시 수프에 포함된 물질들과 요인들에 대한 분석은 그저 과학자들이 최대한 논리적으로 추론해 낸 것일 뿐 정확히 그 당시의 상황과 같은지 다른지 알 방법이 없다.(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모르겠지만.)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원시 수프의 조성을 모두 알고 변수를 집어넣었다고 하더라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일 뿐이다. 수학 이론과 같은 몇 개의 공리 위에서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문제를 컴퓨터를 이용해 증명하는 경우는 있더라도(ex : 4색 문제) 생명의 탄생에 대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돌렸더니 이렇게 나왔더라, 그러니 믿어라 라는 말을 도대체 몇 명의 과학자가 믿을지 의문이다.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주가의 데이터를 집어넣고 시뮬레이션해도 내일 주식시장의 주가 변동조차 제대로 예측 못하는 게 지금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다.



둘째, 에드먼드 커시가 거창하게 말한 7번째 계(생물분류 체계의 하나다), 테크늄(인간이 개발한 기술 그 자체를 말한다.)을 새로운 계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에드먼드 커시는 인간은 미래에 기술과 완전히 융합하는 절대 공생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희망찬 미래를 말한다. 그러나 미래에 기술이 발전해서 사람들이 몸속에 건강을 체크하는 나노봇을 심을 것이고 몸에 새겨진 바코드로 물건을 사고팔 것이며 홍채로 신원을 인식할 것이라는 류의 이야기는 이미 몇십 년 전부터 나왔던 말을 재탕하는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기술을 7번째 계로 받아들인다니. 계라는 것은 생물을 분류하는 체계다. 인간이 만든 기술이 과연 생물체인가? 인공지능을 생명이라 말할 수 있는가? 이 정의조차 제대로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술을 생명체로 정의할 수 있다는 근거 하나도 없이 주장하는 에드먼드 커시의 이야기는 말도 안 되는 어이없는 소리일 뿐이다.(이쯤 읽었을 때는 에드먼드 커시를 과학자라고 할 수나 있는지도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셋째, 에드먼드 커시가 만든 인공지능인 윈스턴이 에드먼드 커시와 두 명의 종교 지도자를 죽이는데 소설 속에서 천재 컴퓨터 과학자로 일컬어지는 에드먼드 커시가 고작 이런 상황도 예상하지 못했을까? 소설의 마지막에 사실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살인사건을 포함한)이 에드먼드 커시의 발표를 더 많은 시청자들이 보게 해서 더 큰 파급력을 가지게 하기 위해 그가 만든 인공지능인 윈스턴이 벌인 일임을 알게 된 로버트 랭던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그 정도의 천재 과학자라면 그러한 일들을 차라리 미리 예측해서 프로그래밍해놓았다는 이야기가 더 이치에 맞을 듯하다. 어차피 곧 췌장암으로 죽을 몸이니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마지막 발표를 대성공시킬 수 있다면 그러한 선택을 했을 인물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에 대해 희망찬 내용을 발표한 에드먼드 커시라는 과학자가 자신이 만든 인공지능에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통해 기술의 진보에 대해 경고를 날리고 싶은 댄 브라운의 의도였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인공지능, 로봇 관련 스토리에서 질리도록 써먹은 이야기고 천재 컴퓨터 과학자가 그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아서 공감을 전혀 하지 못했다.



기대하고 읽었던 댄 브라운의 신작이었지만 생각보다 많이 실망스러웠다. 책 자체가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허점 투성이의 결말은 그때까지 쌓아온 재미를 다 집어삼킬 만큼 부실했다. 댄 브라운의 모든 작품을 읽은 독자로써 다음에는 좀 더 나은 작품으로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빽넘버(Back Numbe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