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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공대생 Jan 21. 2020

어둠의 왼손

'어둠의 왼손' / 어슐러 K.르 귄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어둠의 왼손은 무엇일까? 선뜻 생각나는 것이 없다. 달? 악마? 무()? 이 소설에서는 예상치 못한 답을 내놓는다. 두 명의 주인공, 아이와 에스트라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답을.


행성들의 문화적, 경제적 연합체인 에큐멘은 인류의 진보와 발전을 위한 지식 공유를 주 목적으로 아직 에큐멘의 일원이 되지 않은 행성들에 특사를 보내 에큐멘 가입을 요청한다. 에큐멘의 특사 중 한 명으로 게센 행성이 에큐멘의 일원이 되도록 설득하라는 임무를 받은 겐리 아이는 게센 행성의 부족 국가와 비슷한 개념의 공동체, 카르히데에 도착한다. 카르히데의 수상인 에스트라벤의 도움으로 아르가벤 왕에게 에큐멘 가입을 설득하려던 차에 왕의 사촌인 티베가 권력을 잡기 위해 에스트라벤을 모함하고 에스트라벤이 역적 취급을 받으며 추방당하게 되자 그의 도움을 받고 있던 아이의 임무까지 실패하게 된다.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카르히데와 대립하고 있는 다른 국가, 오르고레인에서 에큐멘 가입을 설득하려 하지만 이해관계와 정치적 대립에 휘말린 아이는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오르고레인에서 쫓겨나 노동의 형벌을 받게 되고 죽어가는 아이를 에스트라벤이 구해낸다. 게센 행성을 에큐멘에 가입시켜야 하는 임무를 받은 아이, 그리고 게센의 에큐멘 가입이 게센 전체 인류의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 믿는 에스트라벤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카르히데로 돌아가 게센의 에큐멘 가입을 성공시키기 위해 끝없이 펼쳐진 빙원 위를 통과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아이와 에스트라벤은 과연 기나긴 빙원 위에서 펼쳐질 고된 여정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을까?


언뜻 스토리를 보면 SF 소설이라기보다는 판타지 소설 같은 느낌이 든다. 사계절 내내 눈이 내리는 겨울 행성 게센, 마치 남극을 탐험하는 듯한 아이와 에스트라벤의 빙원 위의 여정, 게센인들의 특이한 성적 특징(이 소설의 핵심이다.) 등등. 에큐멘이라는 행성 공동체의 특사가 보여주는 SF 적 면모와 지구와 전혀 다른 게센 행성의 환경, 인류가 보여주는 판타지적인 특징이 절묘하게 섞여 환상적이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냈다.


게센 행성의 인간들은 평소에는 아예 성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성별이 나뉘는 때는 25~30일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케메르 주기 때뿐이다. 같은 케메르에 든 사람에게서 풍기는 체취, 페로몬 등의 작용에 의해 남성, 혹은 여성으로 성별이 결정되고 그 시기에만 임신이 가능하다. 그리고 케메르가 끝나면 다시 성별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 소메르 주기로 돌아온다. 즉, 모든 게센인들은 남성이 될 수도, 여성이 될 수도 있으며 임신을 할 수도 있고 출산을 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게센인은 아직도 화로라는 부족 공동체 단위의 생활을 지속하고 있으며 아이의 임신, 출산, 양육 등은 그 부족 공동체 전체의 임무가 된다. 그 누구도 자신이 언제 아이를 가지게 될지, 또 아이를 낳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한쪽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반대편으로 나뉘어 전쟁을 하고 있다. 서로를 비난하고 모욕하며 자신이 속한 성별의 상대적 우월함을 과시한다. 그 지점에서 세상에 나온 지 40년이 지난 이 소설은 아직도 힘을 잃지 않고 살아 숨 쉬게 된다. 성별이란 것이 없다면? 그 누구도 다른 누구와 다르지 않다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되는 선천적인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간단한 상상 하나에서 출발한 이 소설은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별 간의 다툼을 다시 생각해 보도록 만든다. 소설 속 주인공인 겐리 아이는 어느 누구도 성별을 가지지 않는 게센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한 성별을 유지하는 지구인 남성이다. 그는 에스트라벤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다가 몇십 일에 걸친 고된 빙원 위에서의 여정을 함께 해 나가며 겨우 그를 진정한 친구로, 우정의 상대로 받아들인다. 자신과 선천적으로 다른 한 존재를 마음으로부터 인정하고 이해하게 되는 아이.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언젠가는 그처럼 길고 긴 다툼을 겪으며 성장해 자신과 다른 성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소설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한계를 보여준다. 인간은 무엇이든 흑과 백, 남성과 여성, 낮과 밤 등, 두 개의 반대되는 범주로 나누려고 한다. 거기서 나오는 흑백논리는 모든 것을 내 편과 네 편으로 분리한다. 하지만 게센인들에게는 애초에 남과 여라는 선천적인 두 개의 범주가 존재하지 않고 거기서 파생된 문화는 그들을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으로부터 멀리 떼어놓았다. 빙원 위에서 에스트라벤은 아이에게 말한다.


"어떻게 개인이 한 국가를 미워하거나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사람들을 알고, 도시, 농장, 언덕, 강, 바위들을 알고, 가을이 되면 언덕 위의 어떤 경작지 위로 어떻게 해가 지는가를 압니다. 하지만 그런 것에 경계를 긋고 이름을 붙인 뒤 이름이 적용되지 않은 곳은 더는 사랑해선 안 된다니 말이 됩니까?"


게센인인 에스트라벤에게는 나의 국가와 남의 국가, 즉 땅 위에 인간이 폭력적으로 만들어 낸 경계선에서 이루어지는 아군과 적의 구별이 없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남과 여, 둘 중 하나의 성별을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은 흑백논리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런 이들에게는 낮과 밤 사이 노을 지는 붉고도 어두운 하늘에 붙일 이름이 없고, 흑과 백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아름다운 색들에 붙일 이름이 없으며, 남성이면서 남성을 사랑하는 존재나 여성이면서 여성을 사랑하는 존재에게 붙일 이름이 없다.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것들을 흑백논리를 위하여 외면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아군도 적도 아닌 존재가 있다는 사실. 우리는 폭력적인 이분법에서 벗어나 다양함을 조금 더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빛은 어둠의 왼손

그리고 어둠은 빛의 오른손"


빛은 어둠의 적이 아니라 어둠의 왼손이다. 어둠은 빛의 적이 아니라 빛의 오른손이다. 어둠과 빛은 서로 한 몸이며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 정반대로, 또는 적으로 보이는 어떤 것들이 실은 서로 하나이며 서로가 없으면 존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소설 속 한 문장


"어떻게 개인이 한 국가를 미워하거나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티베는 그런 말을 합니다만 저에게는 그런 재주가 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알고, 도시, 농장, 언덕, 강, 바위들을 알고, 가을이 되면 언덕 위의 어떤 경작지 위로 어떻게 해가 지는가를 압니다. 하지만 그런 것에 경계를 긋고 이름을 붙인 뒤 이름이 적용되지 않은 곳은 더는 사랑해선 안 된다니 말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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