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 지니> / 정유정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정유정은 정유정이었다. <7년의 밤>, 그리고 <종의 기원>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눈으로 장면을 직접 보는 듯한 묘사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사건 전개, 내가 글을 읽는 건지 글이 눈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건지 헷갈리게 만드는 흡입력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를 특유의 핍진성으로 자유자재로 그려내는 정유정 작가의 필력은 전작들보다도 더욱 책 속의 사건과 세계관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번 리뷰에서 책의 스토리는 최대한 덮어두도록 하겠다. 언젠가 <진이, 지니>를 읽게 될 독자들이 살아 숨 쉬는 스토리를 직접, 온몸으로 경험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글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을 주절주절 늘어놓고 싶은 마음을 안타깝지만 한쪽으로 치워두고 대략적인 인물과 배경 설명을 쓰자면 일단 주인공은 셋이다. 서른이 넘도록 백수 신세를 면치 못해 집에서 쫓겨난 민주, 영장류 센터 사육사로 일하는 진이, 그리고 머나먼 콩고의 밀림에서 잡혀 대한민국으로 밀수된 보노보(영장류의 일종이다.) 지니. 민주는 집에서 쫓겨난 뒤 온갖 잡일들을 전전하지만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고시원에 함께 살던 아저씨가 '갈 곳이 없을 때 갈 곳'이라고 칭한 망아산 자락의 영장류 센터로 향한다. 멍하니 침팬지를 구경하던 민주 앞에 진이가 나타나 침팬지들을 야외 쉼터에서 안으로 한 마리씩 들여놓는다. 이내 영장류 센터 관람시간도 끝나고 민주는 '갈 곳이 없을 때 갈 곳'에서마저 쫓겨나 '갈 곳이 없을 때 갈 곳 다음에 갈 곳'인 산속 정자에서 하룻밤 노숙을 하게 된다.
한편 민주가 노숙을 하던 그날 밤, 진이는 영장류 센터에서 자신이 애정하고 사랑하는 침팬지 '팬'의 출산 장면을 보다가 뜬금없이 장 교수와 함께 인동호 화재 현장으로 향하게 된다.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으로부터 인동호 화재 현장 속 별장에 밀수된 보노보가 있었으며 그 보노보가 탈출해 높은 미루나무 위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영장류 사육사인 진과 영장류 연구자인 장 교수가 인동호로 가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진이는 보노보 지니를 데리고 영장류 센터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영장류 센터 밴 앞자리에서 빗속에 있던 지니의 차가운 몸을 껴안고 있던 진이. 지니 때문에 안전벨트를 하지 못했던 진이는 비 오는 밤길, 갑자기 밴 앞에 뛰어든 고라니와 자신도 모르게 고라니를 피하려 핸들을 틀어버린 장 교수로 인해 큰 교통사고를 겪는다. 바로 여기에서 <진이, 지니>의 모든 사건과 판타지가 시작된다.
정유정 작가는 <진이, 지니>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 살아가는 것만을 생각하는, 늘 인생의 바로 다음 모퉁이만을 바라보고 전력질주를 하는 진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언젠가 죽음을 실천에 옮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민주. 밀렵꾼들에게 잡혀 한국까지 죽음의 항해를 거쳐 도착하고, 그 뒤로도 계속 인간에게 목숨과 생존을 위협받으면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는 보노보 지니. 이 세 존재의 삶과 죽음에 대한 독자적인 시각은 서로가 얽히고설키며 도대체 삶이란 뭐지? 죽음이란 무엇이지?라는 질문을 소설 속 인물들이, 그리고 독자들이 스스로에게, 또 누군가를 향해 던지도록 만든다.
삶은 유예된 죽음이라고도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던져왔다. 우리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죽지 않고 살아야만 하는가. 바로 그 질문에서 많은 사상과 철학과 학문들이 태어났고 발전해왔다. <진이, 지니>는 그에 대해 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송두리째 뒤바꾸기에는 충분하다. 죽음이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며, 죽음을 겪어보지 못한 당신은 영원히 알 수 없고, 또 죽음이 목전에 닥쳤을 때 모든 생명체가 체감하는 것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으니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열망 그 자체라고.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지니 앞에 엎드려 애원해서라도, 살고 싶었다. 너의 생을 내게 양보해달라고 떼를 써서라도 살고 싶었다. 그것은 내 안, 가장 깊은 바닥에서 울리는 본성의 목소리였다.' (p.346)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의 근원에는 삶에 대한 의지가 자리하고 있다. 너무나 뜨겁고 강렬하고 간절한 삶에 대한 의지가. <진이, 지니>는 그 의지를 사흘간의 치열한 이야기를 통해 또렷하게 들려준다. 나도 모르게 내 속의 삶에 대한 의지가 자극받을 만큼 실감 나게.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소설의 결말은 커다란 의미를 지니게 된다. 진이가 발견한 자신의 삶보다 더 중요한 것, 인간다운 삶과 인간다운 죽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진이의 행동, 모든 생명체의 근원에 자리 잡은 삶에 대한 열망을 버리면서 얻게 된 인간다움. 진이의 마지막 결심에서 인간은 홀로 서는 존재가 아님을 우리는 처절하게 깨닫는다. 삶에 대한 열망을 뛰어넘어 다른 존재에 대해 공감하고 희생하는 존재가 가장 인간답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말이었다.(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여기까지만.)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뭐라고 써야 할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느낀 것, 생각한 것, 체험한 것이 너무나 많은데 내 필력으로는 그것을 도저히 글로 완전하게 옮길 수 없었다. 300쪽이 넘는 분량을 순식간에 읽어버릴 정도로 재미있고 흡입력 있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통찰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반드시 읽어보기를 바란다.
소설 속 한 문장
삶은 살아 있는 자의 것이며, 살아 있는 동안 전력으로 살아야 한다고. 살아 있는 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