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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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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Jun 20. 2022

삼신할머니도 알고 계신대

오늘 밤에 다녀 가신대♪

파지직. 쾅.


굉음이  , 거실에 적막이 감돈다. 나는 벌벌 떨며 겨우 걸음을 뗀다.  화분은 산산조각  채다. 조각난 빨간 도자기 파편같이  심장이 파스슥 깨지는  같다. 날카로운 조각들 사이에 아이가 누워있다. 아이는 7개월.  잡고 일어나던 시기였다. TV장을 잡고 걷다 화분에 손이  것이 화근이었다. 튼튼하게 서있을 줄은 알아도 누구를 지탱하기에는 약했던 기다란 나무화분은 아이와 함께 넘어갔다.
"으아앙" 놀란 아이는 내가 안아 올리자 그제야 울음을 터트린다. 빠르게 아이 몸을 확인한다. 뒤통수, , 다리 어느 곳에도 상처는 없다.  뱉는 것도 잊은 나는 그제야 가뿐 숨을 토해낸다. 철렁 내려앉은 심장은 아직 쿵쾅 거리지만, 다행이다. 아이는 다치지 않았다.


넌 나를 쫄게 해

얼마 전 종영된 '나의 해방 일지' 대사다. 드라마와는 다른 상황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내내 나를 지배했던 건 저 문구였다. 아이는 늘 나를 쫄게 했다. 특히 돌쟁이 아이는 나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놨다 했다. 아무리 조심하고 살펴봐도 사고는 늘 생겼다. 집안일을 하다 유난히 조용하다 느껴지면 가슴이 뛰었다. 고무장갑도 못 벗고 급한 마음으로 아이를 찾았다. 대부분은 화장실 변기 물에 장난감을 씻고 있다던지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빨고 있다던지 하는 잠깐 놀라고 말 일이었지만 가끔 아이는 내 마음을 저 바닥까지 쿵 떨어뜨렸다.


 아이를 키우는 건 100m 달리기 시작선에 있는 것과 같았다.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준비자세로 있어야 했다. 이런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행동은 내 손보다 빨랐다. 잠깐 사이에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입에 넣었고 만지면 안 되는 것들을 찾아냈다. 앞으로도 뒤로도 발라당 발라당 넘어지는 아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우는 아이를 안아주는 일뿐이었다.


마음속으로 기도 했다. '내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은 곳에서도 우리 아기를 지켜주세요.' 종교는 없지만 할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신에게 아이의 안위를 빌고 싶은 마음이었다.


8년을 차린 삼신 상


돌부터 아이 생일 때마다 삼신 상을 차렸다. 살며 제사 한번 지내본 적 없는 나는 제일 달콤하다는 새벽잠까지 스스로 반납하며 정성을 들였다. 생일날 동이 트기 전 자르지 않은 미역으로 미역국을 끓였다. 간을 하지 않은 삼색나물과 팔팔 끓여 식힌 물을 세 개씩 준비했다. 전날 떡집에 주문하여 받아온 수수경단도 함께 올렸다. 동쪽을 향해 상을 차리고 올 한 해도 아이를 잘 부탁드린다고 기도했다. 믿거나 말거나. 누구든 내 아이를 지켜준다면 그게 미신일지라도 거르기 싫었다. (다행히 두 아이의 생일은 같아서 일 년에 한 번만 수고로우면 됐다.)

삼신 상을 본적도 배운 적도 없어 검색한 대로 차렸다. 완벽한 적은 없었다. 어느 해는 나물을 빼먹기도 했고, 어떤 해에는 자른 미역으로 국을 끓이기도 했다. 그래도 8년 동안 삼신 상을 거른 적은 없었다. 맹신은 아니었지만 건너뛰면 찝찝할 것만 같았다. 상을 차린 후에는 떡과 나물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 축하와 덕담으로 아이 생일이 풍성했다.


젖 잘 먹고 젖 흥하게 점지해서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긴 명을 서리 담고, 짧은 명은 이어대서 수명장수하게 점지하고, 장마 때 물 붇듯이 초승달에 달 붇듯이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게 해 주십시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 중앙연구원)


삼신할머니 덕분인지 아이는 큰 사고 없이 잘 컸다. 친구 동생이 잡아당긴 코드에 전기포트가 떨어져 뜨거운 물이 쏟아졌을 때도 아이는 간발의 차로 무사했고, 소파와 침대에서 무수히 떨어졌어도 혹 한번 나지 않고 멀쩡 했다. 꼭 삼신할머니가 아니어도 누군가 아이를 지켜주는 기분이었다. 아니면 이런 무수한 사고 속에서 안전하게 클 수 있었을까?




가끔 아이 어릴 적 이야기를 남편과 나눈다. 남편은 어쩌면 삼신할머니는 나일 거라 농담한다. 삼신 상도 결국은 내가 먹었으니 출산 맞이 아침상 차린 거라 생각하란다. 웃으며 넘겼던 말인데 곰곰이 생각하니 영 틀린 말도 아니다. 삼신 상은 올 한 해도 무사히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스스로의 다짐이었을지도.


올해 아이들은 모두 8살을 넘겼다. 삼신할머니가 보살펴 준다던 시간을 지난 셈이다. 혼자 뒤집지도 못하던 아이는 이제 누구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의 안전을 지킨다. 이제 머리가 무거워 앞으로도 뒤로도 넘어지는 일은 드물게 됐으니 삼신 상을 차리며 빌었던 내 소원은 이루어진 셈이다.


올해는 삼신 상 없는 허전한 생일이겠지만 기도는 계속해보려 한다. 수고스러움은 없겠지만 마음은 여전히 간절하게.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도,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아이들이 안전하기를. 그리고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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