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티카카 Sep 06. 2022

하늘에 떠다니던 풍선의 정체

아이들에게는 전래동화 같을 그 시절 이야기

30년 전 강원도 철원.


풍선이 뒤뚱거리며 산을 넘는다. 갸우뚱한 채로 힘겹게 걷던 풍선은 기어코 군인 아파트 위까지 날아든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는 중간중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풍선이 낮게 날기 시작하면 놀이는 더욱 건성건성 진행된다. 이제 놀이에 집중하는 아이들은 없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바빠지기 시작한다. 길눈이 밝은 아이가 바람의 방향과 풍선 걸음 속도로 도착지를 예상해내는 사이, 머리보다 발걸음이 빠른 아이들은 냅다 뛰기 시작한다.

풍선을 따라잡은 아이들은 운동회 때 박 터트리기 하는 것처럼 설레는 표정이다. 운이 좋으면 타고 오를 수 있는 감나무에서 풍선이 터진다. 나무에 부딪혀 걸음이 멈춘 풍선은 잡힐까 고개를 흔들다 결국 가지에 걸려 펑! 비명을 지르며 터진다. 우수수 떨어지는 형형색색의 작은 종이. 전방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던 '삐라' 다.


삐라
전단지를 가리키는 일본어 비라(ビラ)[1]에서 유래된 말로 일제강점기 이후로는 의미로 '전단지'라는 의미로 쓰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북 또는 대남 심리전 용도로 사용하는 전단지만을 일컫는 말이 되어버렸다. - 위키백과 
출처 - 국립 민속박물관


수상한 풍선은 가끔 학교 창문 밖으로도 자태를 드러낸다. 나는 칠판 대신 창문 밖 풍선을 바라보았다. 지겨운 수업 시간에 이만한 구경거리가 또 어디 있으랴. 바람 따라 둥실 다니는 풍선은 내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전단을 잔뜩 달아 걸음이 늘어진 풍선은 뒤뚱거리며 날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방향을 풍선 덕분에 알게 된다. 풍선은 고향이 그립지도 않은지 남쪽으로 떠간다. 풍선 따라 내 생각도 정처 없이 흘러간다. 북한 어느 건물에서 작은 종이에 빽빽이 그림과 글씨를 쓰는 어른들을 상상한다. 철책선과 세떼들에게서 무사히 살아남은 풍선의 여정을 대견히 여기기도 한다. 띵동댕동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내 상상도 끝이다. 선생님께 걸리지 않고 무사히 수업을 넘긴 나는 풍선을 금방 잊은 채 친구들 사이로 빨려 들어간다.


출처- 뉴스카페 (http://www.newstomato.com/one/view.aspx?seq=979852&repoter=%EC%B5%9C%EA%B8%B0%EC%B2%A0)


궁서체 같은 그림과 뾰족한 글자들이 있는 전단은 북에서 풍선을 타고 넘어왔다. 종류도 다양한 삐라 10장을 모아 경찰서에 가면 연필이나 공책을 선물 받을 수 있었다. 얼굴이 까맣게 타고 구정물이 꾀죄죄한 아이손에 들려진 전단을 보고 경찰 아저씨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들은 그저 어른들의 칭찬과 선물에 홀려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고 작은 종이를 모았다. 여름방학이 지나 두툼한 삐라 뭉치를 가져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선생님은 개수를 세어 순위를 매긴 뒤 상장이나 선물로 아이들의 고생을 치하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포스터에서 그려졌던 북한 사람들은 내 어릴 적 상상만큼 나빴을까? 무조건 좋게 묘사되던 미국 사람들은 전해 들은 만큼 착했을까? 어릴 적 편견을 깨며 자라는 사이 삐라는 나의 세상에서 사라져 갔다.


지금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꺼낸다면 어떻게 말해줘야 하나. 나는 아직도 갈피를  잡겠다.

그저 바라볼 따름이다.  아이들의 세상은 나의 세상보다  평화롭기를.

그리고 상상해 본다. 풍선만 넘나들수 있던 철책선 너머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시대를.

매거진의 이전글 동생의 계절 - 가을과 겨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