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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Sep 04. 2022

동생의 계절 - 가을과 겨울

동생의 가을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모두에게 인기 있는 가을 스포츠 라면 단연코 잠자리 잡기였다. 고추잠자리는 흔했다. 흥미가 떨어지는 걸 아는지 고추잠자리는 아이들 머리 위로 낮게 날았다. 공주 잠자리는 여자아이에게 인기가 많았다. 날개 끝자락이 봉숭아 물들인 듯 고왔다. 물잠자리는 검은색의 날렵한 몸매를 가졌다. 얇은 몸체에 속도가 빨라서 잡기 힘들었다. 강가 풀숲을 요리조리 낮게 나는 탓에 한두 마리 잡기가 힘들었다.  강물에 빠져 옷을 버리는 일도 허다했지만 억울하지 않았다. 채집통에 까만 잠자리를 넣은 아이들은 모든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개구리 소리가 잦아든 가을의 밤. 새시가 없는 베란다에 동생과 앉아 잠자리 날리기를 했다. 채집통에서 나온 잠자리는 어리둥절 원을 그리며 돌다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잎사귀 무늬의 투명한 날개에서 우웅 우웅 소리가 났다. 동생은 가끔 잠자리 날개를 뜯곤 했다. 나는 꺄악 소리를 질렀다. 부엌에서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지면 동생은 내게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날개 없는 잠자리의 비행은 애처로웠다. 



동생의 겨울


© isiparente, 출처 Unsplash

코 끝이 시려지는 겨울. 큰 다리 부근에 스케이트장이 열렸다. 논을 막아 만든 간이 스케이트장이었다. 아침 든든히 먹은 동생은 스케이트화를 어깨에 메고 얼음장으로 출근했다. 아빠에게 부탁해 하키 채도 얻었다. 빙상장에 모인 친구들은 동생의 마음을 든든하게 했다.  

몸이 꽁꽁 얼면 스케이트 옆 임시로 세워진 천막 안으로 들어가 난로에 몸을 녹였다. 사람들 입김으로 천막에 씌워진 비닐에 뽀얗게 김이 서렸다. 천막 안에는 간이매점이 있었다. 동생은 주머니에 꼬깃하게 접힌 돈을 꺼내 점심을 해결했다. 배가 차면 힘을 얻어 또 얼음을 치러 나섰다.

동생은 빙상장에 제일 먼저 들어가 제일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가느다란 겨울 햇빛은 얼음 위에선 강했다. 얼음에 반사되어 얼굴에 쏟아진 자외선은 동생 얼굴을 새카맣게 만들었다.

두 달의 겨울방학 동안 동생은 쑥 커져있었다. 키가 자라면 콩나물처럼 쑥쑥 자란다고들 한다. 껍질 붙은 콩나물 같은 동생은 겨울이 지나자 얼굴은 까맣고 몸은 길쭉해져 있었다.


 칼바람은 여전히 겨울 시작처럼 매서웠지만 봄의 기운은 산을 넘어 논 바닥으로 흘러 들어왔다. 2월이 되자 논을 매운 두꺼운 얼음은 조금씩 얇고 투명해졌다. 동생의 널빤지 하키 채가 손때로 반들반들 해 질 때쯤 스케이트장은 문을 닫았다. 동생은 갈 곳을 잃어 잠시 슬퍼했으나 밀린 방학숙제로 슬픈 기분이 오래갈 수 없었다.


매년 올 것 같았던 겨울의 스케이트장은 다음해면 작아져 못 신을 스케이트화처럼 우리를 떠나갔다. 동생과 나의 겨울. 우린 길었던 그 겨울을 사랑했었던 듯싶다.





부모님은 둘째에게 관대한 편이다. 내가 지지리도 싫어했던 눈높이 학습지도 윤선생 영어도 동생을 비켜갔다.  남동생은 존재만으로도 부모님의 흐뭇함이었다. 엄마 아빠의 사랑이라 불리는 방임 속에 남동생은 자유를 얻어 훨훨 날았다.


생기 가득했던 어린 동생이었거만 지금은 퉁퉁해진 30대 아저씨가 되었다. 일에 치여 푸석해진 동생은 아직도 그 시기를 자신의 전성기로 꼽는다. 계절 따라 행복했던 나의 어린 동생. 지루한 일상이지만 가끔은 그때처럼 신나는 일들이 생기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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