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을 대하는 방법
어릴 적 자주 고열에 시달렸다 한다. 감기가 걸리면 기침과 몸살보다 먼저 열이 달아올랐다. 몸에 퍼진 열꽃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고, 의사는 열의 원인으로 편도를 지목했다.
수술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나는 나비 모양으로 거대해진 편도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시도 때도 없이 열을 올리던 편도를 떼내고 축농증으로 번질뻔한 만성 염증을 잡았다. 그 후 어른이 될 때까지 크게 아팠던 기억이 없는 걸로 보아 수술은 성공적이었던 듯싶다.
작년 3월. 코로나에 걸렸다. 밤새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겨우 재우고 나니 온몸이 뜨끈했다. 열을 재보니 39도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겪는 열에 정신이 혼미했다.
회복 후 주위 사람들에게 들으니 코로나라는 병명은 같으나 증상은 천차만별이었다. 기관지가 안 좋았던 이는 유난히 기침이 심했고, 허리가 안 좋았던 이는 근육통과 허리통증이 심했다. 나는 열이 아주 많이 그리고 오래갔다. 주위 의견을 종합해 보니 나의 약했던 곳은 열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었나 싶다. 제일 약한 곳을 파고들다니. 참으로 고약한 병이 아닐 수가 없다.
수영장 바닥에는 도로처럼 선이 그어져 있다. 가로선은 레일 끝을 알리는 선이다. 보이면 멈추기 시작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천장에는 가로선을 대신할 깃발이 있다. 배영을 하다 깃발이 보이면 속도를 줄인다. 가로선과 깃발. 레일 안의 정지선이다. 초보들은 선을 볼 새가 없어 수영장 끝 벽에 머리를 부딪히는 일이 잦다.
세로선은 레일을 반으로 나눈 선이다. 선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출발해 왼쪽으로 돌아온다. 물에 그어진 선을 넘는다고 딱지가 날아오지는 않지만 잘못 넘었다가는 상대방과 머리를 부딪히거나 발로 차이는 부상을 입을 수 있기에 서로 조심한다. 세로선은 레일 안의 중앙선인 셈이다.
평영을 시작하며 몸이 기우는 걸 느꼈다. 되짚어 보자니 자유형부터 그랬다. 분명히 똑바로 발차기를 하는데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면 선을 넘기에 늘 조심했다. 그때는 초보라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다. 다리 때문일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다.
다리를 다쳤었다는 건 평소에는 인식조차 못했다. 사고가 난 지는 30년 전이었다. 길이와 굵기가 조금 다르긴 했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를 차이였고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 건지) 걷는데 불편함도 없었다.
물속은 달랐다. 발차기를 하면 할수록 자꾸만 한쪽으로 몸이 쏠렸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내 다리는 남들과 달랐다.
양다리의 힘이 다르니 앞으로 나아갈 때 몸이 뒤뚱거렸다. 자유형에서는 팔로 균형을 잡았지만 양발을 동시에 차 나가는 게 중요한 평영에서는 균형을 대신할 장치가 없었다. 쑥쑥 지나가는 다른 회원들을 보자니 조바심이 났다.
내가 자꾸만 선을 넘는 이유
수업을 잘 따라오던 내가 버벅대니 선생님은 답답해했다. 밝히고 싶진 않았으나 선생님께 대강의 설명을 해야 했다. 선생님 눈에 난처한 기색이 스쳤으나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비밀 이야기 하듯 기대어 오시며 방법을 찾아가자 용기를 주셨다. 그때부터 선생님과 나와의 특별한 강의가 시작되었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아는지라 조언보다 나만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힘 조절을 익혀야 했다. 선생님 말씀 따라 타이밍과 자세교정을 신경 썼고 여러 번 차보며 힘의 균형을 맞춰보고자 했다.
나는 노력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억울해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함께 운동을 시작한 회원들이 상급반으로 올라갈 때도 부러워하기보다 연습에 신경 썼다.
'열심히 연습해서 극복해 냈습니다.' 하는 드라마 결말 같은 건 내게 없다. 제일 오래 연습했음에도 내 평영은 아직도 흐느적거리는 개구리 같다. 그래도 속상하지는 않으련다. 뻥! 차내는 다리힘은 부족하나 튼튼한 팔로 균형을 맞추고 호흡으로 보완해 본다. 조금 옆으로 가면 어떻고 속도가 느리면 어떤가. 안 되는 건 노력해 보고 그것도 안되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약점.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 힘들어질 때 더 깊고 아프게 찾아든다. 내 편도가 그랬고 다친 다리가 그랬다. 어찌할 수 없는 나의 결점. 피하지 않고 마주하니 이겨낼 방법이 생긴다. 결국은 없애기로 한 내 편도가 그렇고 적응하는 법을 배운 다리가 그렇다.
취미로 하는 운동 중 잠깐의 삐걱거림에 약점을 운운하며 인생에 대해 논한다는 게 우습지만. 작은 것에서도 깨달음을 얻는 것에 의의를 두며 글을 마친다.
내 몸의 약점. 숨기고 감추지 않고 마주하고 겪어냈으니 나는 조금 더 커졌을 거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