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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Oct 23. 2021

" 다 누나 때문이야! "

전라도 광주광역시 (큰엄마, 동생 편)

내가 입원을 하며 동생은 둘째 큰엄마 집에 맡겨졌다. 5살. 엄마가 세상의 전부였던 나이.

동생은 엄마와 이별했다.




동생의 기억



누나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따라 뛰려던 차. 굉음이 들린다. 누나가 하늘로 붕 날아간다. 차들이 모두 멈춘다. 쿵! 눈이 빠르게 누나를 쫓는다. 찾았다! 저 멀리 누워있는 누나가 보인다. 도로가 갑자기 분주해진다.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이 뻗친다. 병원에 데려다주겠다며 차들 뒷좌석이 열린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엄마와 우리는 택시에 태워진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에 정신이 없다. 손잡이를 가만 잡고 앉는다. 병원에 도착한다. 엄마는 누나만 안고 입구로 달린다. 남겨진 내게 아저씨가 말을 건다. 번뜩 정신이 든다. 놓치지 않으려 재빨리 엄마를 쫓는다. 뛰는 건 자신 있다. 금세 손에 엄마 옷자락이 잡힌다.


그날 저녁. 낯선 곳에 누워있다. 천장도 이불도 어색하다. 심란한 마음과 다르게 잠이 쏟아진다. 눈치도 없는 눈꺼풀에 기어코 지고 만다. 긴 하루였다. 눈이 감긴다.


아침이다. 엄마가 없다. 갑자기 설움이 몰려온다. 일어나자마자 엉엉 운다. 부엌에서 큰엄마가 달려온다.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울음소리에 형과 누나가 뛰어온다. 문 뒤에서 호기심 어린 눈빛이 오간다. 갑자기 뚝 떨어진 나는 얼마간 이 집의 막내가 된다.


형은 9살이다. 예전부터 형아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뭇가지를 마법 지팡이 삼아 누나 앞에서 흔들곤 했다. "형으로 변해라!" 했지만 누나는 그대로 누나였다. 그런데 갑자기 소원이 이루어졌다.

'오예! 나도 형아 있다!'

형은 다 잘했다. 누나는 누워서 책만 읽는데 형은 달랐다. 달리기도 잘하고 공도 잘 찼다. 형은 참 멋졌다. 꾹 막혀 나오지 않던 말도 형에겐 예외였다. 하지만 형은 친구들이 더 좋나 보다. 큰엄마가 놀아줘라 이야기할 때만 설렁설렁 놀아주다 친구들과 쌩하니 달려 나갔다. '누나는 안 그랬을 텐데..' 갑자기 서글퍼진다.


주말에 엄마를 만난다. 큰엄마는 아침부터 바쁘다. 세수만 2번을 했다. 불편한 재킷을 입었다. 큰엄마는 어깨를 몇 번이고 털어준다. 아빠가 데리러 왔다. 함께 병원으로 출발한다. 엄마에게 화를 내겠다 다짐했는데 얼굴을 보니 반가움이 앞선다. 누나는 이상한 침대에 누워있다. 누나는 전혀 반갑지 않다. 울화통이 치민다.


‘다 누나 때문이야!’

 

누나 있던 병실은 싫다. 옥상을 구경하고 싶다 조른다. 엄마는 풍선을 불어 실에 달아주었다. 풍선을 들고 위풍당당 계단을 른다. 즐거운 시간이다. 얼마 놀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혼자 두고  누나를 걱정한다. 이제 그만 내려가자는 엄마 말에 심퉁이 난다. '나는 하나   손가락이 모자라게 엄마 없이 지냈는데.. 누나는 잠깐을  참는 거야?' 화가 나자 입이 자꾸만 앞으로 앞으로 튀어나온다.

그때, 눈앞에 잠자리가 나타난다. 잠자리는 빙글 돌다 난간에 살며시 앉는다. 나는 살금살금 다가가 두 손으로 날개를 턱 잡는다. 웃음이 번진다. 잠자리 꼬리에 실을 매고 병실로 돌아온다.

 

누나는 겁이 많다. 오만 걸 다 무서워한다. 엄마는 오랜만에 본 아빠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지금이다!'  얼른 잠자리를 침대에 묶는다. 날개가 자유로워진 잠자리는 누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도망갈 수 없던 누나는 울먹인다. 잠자리는 실 길이만큼 날으며 누나를 약 올린다. 재밌었던 구경은 누나 울음 때문에 금방 엄마에게 들키고 만다. 혼날 생각에 어깨가 동그랗게 말린다. 엄마는 잠자코 실을 풀어 잠자리를 놓아준다. 그리고 날 꼭 안아준다. 말렸던 어깨가 쭉 펴지며 의기양양해진다. 누나 보란 듯 삐죽 웃어 보인다. 혼나지 않는 날 보고 누나는 더 대차게 운다.


"병원에서 같이 살고 싶어요. 나도 엄마랑 있고 싶다구요." 울며 졸라봤지만 과자봉투만 손에 쥐어질 뿐이다. 오늘은 왠지 옆돌기도 재미없다. 누나가 밉다. 집에 오면 괴롭혀줄 테다.




큰엄마의 기억



동서를 빼닮은 아이는 일 년에 두어 번 봤을 뿐이다. 덩그러니 놓인 아이와 나사이 서먹함이 감돈다. 아이는 말이 없다. 통통한 입술을 앙 다물고 대답도 고갯짓으로 대신한다. 마음 알 길이 없다. 편식도 심해 밥도 잘 안 먹는다. 반찬을 바꿔 놓아주지만 밥상만 뚫어져라 볼 뿐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참치를 내었다. 밥상에 앉은 아들 딸은 눈치만 본다. 입에 넣어준 참치를 가만가만 씹던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이의 고갯짓에 신호총 울리듯 남매의 젓가락이 참치캔으로 달린다. 이 맛있는걸 안 먹는 동생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구운 김에 밥을 얹어 겨우 한 끼를 끝내 본다.


상황이 급했는지 도련님이 챙겨 온 가방은 뒤죽박죽이다. 옷이 영 부족하다. 아들 옷은 아이에게 크다. 시장에 데려가 이것저것 입혀본다. 평소였음 덜컥 손이 가지 않았을 고가의 옷에 눈길이 간다. 며칠 뒤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다. 동서 보기에도 멀끔한 옷을 골라본다. 입혀보니 아이에게 썩 잘 어울린다. 내친김에 바지와 내복도 넉넉히 산다.


아이는 옆돌기에 빠져있었다. 꽃게도 아닌데 손을 짚고 옆으로 옆으로 다닌다. 입 꾹 다물고 큰 눈만 끔뻑끔뻑 거리다 돌기 시작하면 끝도 없었다. 다칠까 노심초사였다. 이런 마음 알길 없는 아이는 시장 가는 길, 공원 가리지 않고 옆으로 돌며 다닌다. 풍차 돌리듯 동네를 빙글빙글 돌아다니던 아이는 결국 아스팔트에서 넘어지고 만다. 하얀 이마에 빨간 피가 스린다. 상처는 컸다. 흉터가 걱정이다. 맡아준 애를 이모양으로 만들었다고 남편은 화를 냈다.

 동서, 도련님 모두 집안의 막내였다. 부탁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던 어린 시절을 가졌단 뜻이다. 철없는 부부는 턱 하니 아이를 맡기고는 쌩하니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 봐준 공은 없다더니..' 투덜여보지만 마음 한켠이 무겁다.


창문 너머 찬바람 한 자락 들어오던 초가을의 어느 날. 잠든 줄 알았던 아이가 이불을 파고든다. 팔을 내어 꼬옥 안아준다. 남매의 어릴 적처럼 아이는 따뜻하고 보드랍다. 무뚝뚝한 아이의 사랑 표현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가만가만 등을 쓸어준다. 잠에 들려는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숨소리가 짙어진다. 아무도 모를 둘만의 추억이 생긴다. 이 기억은 오래갈 것이다. 어쩌면 애틋함이란. 핏줄보다는 함께한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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