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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Apr 08. 2023

백 마디 말보다 든든한 한 그릇

내가 사랑을 표현하는 법


평소보다 이른 아침. 싱크대 앞에 선다. 앞치마 두르는 손에 비장함이 감돈다.

오늘 아침은 전복밥이다. 수산물 직판장에서 사 온 싱싱한 전복이다. 숟가락으로 요령 있게 껍데기를 떼고 탱탱한 살에서 뾰족한 입을 제거한다. 내장을 분리하고 얇게 썰어 놓으니 그제야 내가 알던 전복모양이 된다. 주먹보다 큰 표고버섯을 도마에 놓는다. 슥슥 부드럽게 썰어내면 칼에 진한 버섯향이 베인다.


프라이팬을 꺼내 불린 쌀에 내장을 볶는다. 바다색이 쌀에 스며들기 시작하면 팬 가장자리에 간장을 두른다. 타듯 끓어오르는 간장에 표고를 가득 섞는다. 버섯 숨이 죽으면 전복 살에도 간장 향을 입힌다. 부엌이 금세 맛있는 냄새로 가득 찬다. 쌀 위에 볶은 재료와 나머지 전복을 가득 채워 밥을 짓는다.


밥이 될 동안 달래 간장을 만든다. 쌉쌀한 달래 뿌리는 달달한 봄을 담고 있다. 곁들일 김도 먹기 편하게 자른다. 조미 김이 아닌 재래 김이다. 불에 살짝 구으니 성긴 곱창김 사이로 불이 오르내린다.

묵직한 압력밥솥이 소리를 낸다. 취익취익 추가 흔들릴 때마다 진한 밥 냄새가 난다. 불을 살짝 줄이고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한다. 큼직한 모시조개를 넣으니 뽀얀 국물이 우러나온다. 딱딱하고 검었던 미역은 국물과 만나 부드럽게 풀어지고 원래의 옅은 색을 되찾는다. 냄비 안에서 조개가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다 떡 하니 입을 벌리면 미역국도 완성이다. 팬을 하나 더 꺼내 생선도 굽는다. 생선껍질이 온전하려면 조심해야 한다. 성질 급한 내게 어려운 일이다. 지루한 기다림 끝 뒤집개로 슬쩍 들춰보니 바삭함이 느껴진다. 성공이다. 

얼추 준비가 끝날 때쯤 요란하던 추가 멈춘다. 앞치마를 풀며 비장했던 표정도 풀어버린다. 기쁜 마음으로 식구들을 부른다. 아침 준비 끝이다.


온 식구가 식탁에 모여 앉는다. 소박한 바다 한상이다.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아침을 먹기 시작한다.

어머님은 전복밥이 먼저다. 내장빛 도는 밥을 김에 싼다. 달래 간장 조금 얹어 한입 크게 입에 물면 구워진 김이 ‘바삭’ 입에서 부서진다. 아버님은 모시 조갯국부터다. 조개에서 우러난 바다맛은 고깃국과는 다른 시원함이다. 맑은 국물로 속을 달래니 '크으' 소리가 절로 난다. 남편은 전복밥에 부추무침을 넣고 슥슥 비빈다. 한 숟가락 크게 뜬 밥 위에 파김치를 올려 먹으면 비릿함과 알싸함이 만나 침샘을 자극한다. 아이들은 껍질 바삭하게 구운 갈치를 가리킨다. 나는 생선 옆구리 잔가시와 큰 가시를 빠르게 바른다. 쓱 젓가락으로 길게 떠 밥 위에 얹어 주면 짭조름한 맛에 아이들 숟가락질이 바빠진다.


잠시 대화가 끊긴다. 부족한 게 없나 조용해진 식탁을 훑으며 조심스레 가족들 표정을 살핀다. 모두가 편안하다. 쉬지 않는 젓가락을 보며 휴우 그제사 안심한다. 기쁜 마음으로 식구들 따라 나도 한술 뜬다. 파김치와 한입. 부추무침과 한입. 맛있게 한 그릇 비워낸다.



나는 요리하는 게 좋다. 그중 으뜸은 작은 입에 오물오물 들어가는 아이들 밥상이다. 살뜰하게 챙긴 날에는 의무를 다 한 것 같아 마음이 풍요롭다. 가끔 시부모님, 부모님 모셔서 해드리는 한상도 즐거움이다. 받은 사랑 조금이라도 갚는 기분이 들어 뿌듯하다.

 

여름마다 피클과 장아찌를 담아 주변 사람들과도 나눈다. 두드린 고기로 돈가스를 가득 만들어 아이 친구집과도 나눠 먹는다. 마음에 비해 실력은 미약하나 요리하는 동안 꽤나 즐겁다.


따뜻한 밥을 나누는 건 내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지인들과 대화하며 식성을 유추하고 좋아할 만한 음식을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레시피를 살피고 요리 순서를 생각하고 어울리는 그릇을 고르는 상상을 한다. 늘 해피엔딩인 생각의 끝. 주고자 했던 사랑이 내게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흔한 밥상이 지겨워지면 도서관에 앉아 요리책을 본다. 여러 나라 음식을 한참 보다 보면 금세 마음이 배부르다. 고요한 도서관 한 귀퉁이. 나만의 쩝쩝 여행은 늘 즐겁다. 




식탁에 둘러앉아 사랑하는 이와 마주 앉는다. 반짝이는 나의 사람들을 보며 바라본다.

고심해 고른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으로 건강함을 얻길 바란다. 건강함은 힘든 일을 버텨 낼 수 있는 자산이 되어줄 것이다. 정성껏 차린 음식으로 마음을 위로받았으면 한다. 한 그릇에 당신을 위한 내 마음을 담았으니 부디 그대가 굳건해지길 바란다. 그리고 건강하고 굳건해진 사람들 곁에서 나도 행복해지길 바란다.


나는 오늘도 부엌으로 출근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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