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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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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Oct 05. 2021

조각바다 보이는 이모집



바닷물 첨벙이는 작은 다리를 건너면 이모집이 있다. 배들이 흔들흔들 정박해 있는 다리가 좋아서 이모를 ‘다리 이모’라 불렀다. 둘째 이모는 내가 지어준 별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통화 때면 “다리 이모가~ 다리 이모가~” 하셨다.


이모네 집은 3층짜리 빌딩이었다. 우리 사는 아파트와도 할머니 집 주택과도 달랐다. 1층은 이모네 문방구였다. 가게는 보석상자 같았다. 이모는 반지와 뽑기가 가득한 반짝이는 물건들 틈에서 일했다. 이모네 가게에서 팔던 바비인형이 정말 가지고 싶었는데, 아빠는 말도 못 꺼내게 하셨다. 가게 물건은 다 이모네 건 줄 알았던 나는 그게 늘 불만이었다.


빌딩 2층을 가려면 높은 계단을 올라야 했다. 계단은 낮고 좁고 가팔랐다. 2층에서 구르면 입구까지 굴러 굴러갈 것 같았다. 키가 큰 이모부는 천장에 손을 딛고 계단을 올랐다. 사촌 언니 오빠들은 책가방을 메고 벽을 짚으며 다녔다. 이모는 늘 내가 넘어질까 걱정하셨다. 3층에서 우당탕탕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면 가게에서 고개를 빼고 내 안전을 확인하곤 하셨다.


2층은 여행사에 세를 주었다. 전화벨 소리가 끊기지 않는 가게엔 철가방 든 배달 아저씨가 오갔다. 나는 가끔 3층 계단 칸에 앉아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여행사 아줌마 아저씨들은 문 열고 나올 때마다 귀신 본 듯 놀랬다. 그게 재밌었는지 어쨌는지 자주 계단에 앉아 놀았던 것 같다.


3층 이모집을 들어가면 현관 바로 오른쪽에 화장실이 있었다. 계단 아래 지어진 화장실은 삼각형 모양이었다. 천장도 마찬가지로 세모 모양이어서 목욕할 때마다 공주님 사는 성안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신데렐라가 초대된 파티를 상상하며 좋아했던 나와는 달리, 장신인 이모집 사람들은 높낮이가 달라지는 화장실을 늘 불편해했다. 일곱 살인 나만이 허리를 굽히지 않고 당당히 그 문을 드나들었다.


화장실 맞은편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방이 있었다. 그 방문에서는 지붕 사이로 조각 바다가 보였다. 바다는 다른 집들 지붕모양에 맞춰 잘라 잘라지다 오각형 모양이 되었다. 하늘빛 닮은 바다에 떠있는 배들은 가끔 공중에 떠있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나는 까치발을 하고 창문에 기대서 작은 모양의 바다를 바라다보았다.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 때면 그 배들이 지붕을 지나 창문 앞으로 날아올 것만 같았다. 선장 아저씨가 배를 몰고 오면 어떤 말을 해야 하나 생각했다. 놀라지 말고 태연한 척 말을 거는 내 모습이 너무 멋져 밤이 가는 것도 모르게 즐거웠다.


이모는 깔끔하고 부지런했다. 일하는 와중에도 부엌은 완벽 그 자체였다. 가스레인지는 요리를 한 적 없는 것처럼 반짝반짝했고 바닥은 끈적임 하나 없이 매끈했다. 어디서 그리 예쁜 소품들을 사 오는지 먼지 하나 없는 선반은 재미난 것들로 가득이었다.


이모는 다정하고 친절했다. 오빠들에게도 윽박지르는 일이 드물었다. '엄마가 이모 같았으면 좋겠다' 생각하곤 했는데 엄마는 내 마음을 눈치챘나 보다. 친정나들이 온 날엔 이모집에 날 기한 없이 던져두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3층 계단은 밑보다 더 기울어져 있었다. 높은 계단은 동그랗게 꺾여 옥상으로 이어졌다. 지붕에서 내려오는 햇살은 계단 각도에 따라 그늘이 졌다. 갑자기 어두워지는 계단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짧은 동굴체험이 끝나면 모험가가 된 듯 의기양양하게 옥상으로 입장했다. 옥상은 이모 마음으로 꽉 차있었다. 엄마는 가끔 이모는 꽃집을 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모는 길가에 피어있는 꽃 뿌리를 살살 달래 가며 집으로 가져오곤 하셨다. 지나던 집에 고운 화초가 보이면 양해를 구하고 가지를 얻어오기도 했다. 그렇게 집에 들어온 식물들은 구김 없이 잘 자라 옥상정원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잘 꾸며진 작은 식물원 안에서 어린 나는 내 행복했다.


아이들의 참새방앗간이던 이모네 문방구는 10년 만에 간판을 내렸다. 같은 자리에서 이모는 한동안 치킨집을 했다. 고등학생이 된 내 마음에 이모 가게는 여전히 보물상자 같았다. 내 취향은 바비인형에서 치킨으로 바뀌고, 그사이 동네 풍경은 달라졌다. 20년이 지나자 바다를 깎아대던 지붕 집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동네에서 눈에 띄게 높았던 3층 이모네 빌딩은 키 자랑도 부끄러운 낡은 건물이 되었다. 지붕 위를 나는 해적선을 상상했던 나는 세월과 함께 없어지고 이제는 창문 밖으로 집 시세를 궁금해하는 어른이 되었다.




큰언니, 사촌오빠 모두 결혼하여 떠난 후 이모는 2층짜리 주택을 지어 이사를 갔다. 새로운 이모집은 외할머니 돌아가신 후 엄마의 친정집이 되었다. 내가 울산으로 내려온 후 몇 년은 이모네서 엄마 아빠와 만났다. 아이들은 예쁘게 꾸며진 주택을 좋아했다. 담장으로 고양이들이 오갔고 마당에는 블루베리 나무와 꽃들로 꾸며져 있었다. 딱 이모 같은 아기자기한 집에서 우리 가족은 며칠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다.


산 안쪽으로 이사 간 이모는 더 이상 다리 이모가 아니다. 하지만 습관이 되어 고쳐지지 않는다. 다리 이모는 어디에 살던 내게 영원히 다리 이모다.

상상하고 실컷 뒹굴었던 집은 사라졌지만, 이모는 내 인생에 길게 계셨으면 좋겠다. 다정한 우리 이모. 새로운 집에서 이모가 늘 행복하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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