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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May 30. 2022

나의 단유기

아이 둘을 모유로 키웠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됐다. 첫째는 모유만 찾았다. 4시간씩 굶겨 봐도 분유와 젖병을 거부했다. 14개월쯤 먹였나 보다. 힘들었던 기억에 둘째는 산후조리원부터 분유를 먹였다. 분유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모유를 안 먹는다 했는데, 둘째도 젖병을 밀어냈다. 질투가 남다른 둘째가 엄마를 차지하기 위한 방법이었을까? 젖병을 격하게 거부하는 바람에 둘째와도 15개월을 붙어살았다.


© gdakaska, 출처 Pixabay

 

첫 번째 단유는 아이가 14개월 때 결심했다. 흐지부지한 내 성격과 다르게 남편은 기고 아니고 가 확실한 사람이다. 1달을 주저하는 나에게 “오늘부터다!” 결정을 내려줬다.

“이제 ㅇㅇ는 우유 먹어야 해. 더 먹으면 엄마가 아파질 거야.” 남편은 아이에게 딱 두 마디를 전했다.

아직 말도 서투른 아이가 뭘 알아듣겠냐 싶었는데 아이는 주먹을 쥐고 파르르 떨며 울었다. 낮에는 보채지 않고 눈물만 흘리는 아이가 신기했다. 밤이 되었다. 보통 생후 100일이면 끊는 밤중 수유를 1년 넘게 한 탓에 끊기 어려울 거라 짐작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아이는 참아내었다. 너무 괴로워하면서도 손도 대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젖몸살에 시달렸던 그 밤. 내가 아파서도 울었지만 내내 힘들어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더 많이 울었다.

다음날 우리는 기분전환 겸 어린이대공원으로 향했다. 평소에 너무 좋아하던 곳이었는데 아이는 동물을 보는 내내 한 번도 웃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절망한 얼굴에 마음이 아팠다. 안쓰러운 마음에 "다시 먹을까?" 물어봤을 때도 또르르 눈물만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허망한 눈빛이 기억난다. 그날 보았던 아이 표정은 아직도 내 눈물 버튼이다.


10년을 키우고 보니 첫째는 참아내는 성격이다. 강하게 요구하는 법이 없다. 잠깐 떼쓰기 시작하려다가도 내 기분을 살피고 금방 돌아온다. 주위 사람들은 키우기 쉬운 순한 아이라 부러워한다. 그런데 나는 왜 인지 아이가 참 안쓰럽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참아내고 양보하는 게 속상하다. 이런 성격인 줄 알았다면 사랑하는 것과의 첫 이별을 그렇게 매정하게 마무리 짓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젖을 먹으면 엄마가 아프다 하니 참아냈을 터이다. 아기가 무슨 생각으로 저리 행동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그때 그 표정은 사는 내내 내 머릿속에 남아 기억할 때마다 날 책망하게 할 것 같다.


두 번째 단유는 둘째 15개월 때였다. 둘째에게도 남편은 똑같은 말을 해줬다. 충분히 이해한 듯한 표정이었지만 아이는 아빠 말을 듣지 않았다. 화를 내고 떼를 쓰고 요구했다. 아빠 말을 비웃듯 모두 잠든 밤에 홀로 깨어 내 옷을 들추고 실컷 먹었다. 한 달을 혼나도 아이는 제 마음대로 했다.

 

마음대로 하는 둘째를 보면 신기하다. 나와 너무 다른 모습에 어쩔 때는 통쾌한 기분도 느낀다. 아이의 성격을 알기에, 신나 하는 건 제지하지 않고 실컷 하게 둔다. 제풀에 지칠 때까지 풀어 두어야 내 말이 귀에 꽂힌다. 마음껏 놀고 난 아이는 제 할 일을 척척 해낸다. 잔소리가 필요 없다.

© gdakaska, 출처 Pixabay


매운 음식도, 커피도 참아야 했던 수유기간 동안 난 참 힘들었다.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 아이를 맡기고 외출도 못했다. 그랬다. 그런데 그토록 지겨워했던 수유기는 시간이 지나니 힘든 건 쏙 빠지고 그리운 기억만이 남는다.
포동포동한 엉덩이를 받치고 안아 수유를 하면 아이는 위를 올려다보며 씽긋 눈웃음을 주었다. 꿀떡꿀떡 먹으면서 작은 손으로 내 손가락을 꼭 잡아주기도 했다. 눈 맞춤은 더 황홀했다. 까만 우주 사이에 별 같은 눈동자. 아이는 반짝였다. 머리를 쓰다듬고 눈썹을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쓸어내렸다. 온몸에서 젖 냄새를 풍기던 아이는 작은 입으로 푸푸거렸다. 분명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인데, 어쩐지 우리는 대화를 하는 듯했다. 밤이면 스탠드에 비친 아이 얼굴이 보송거렸다. 솜털을 가만가만 만졌다. 먹다 스르르 잠드는 순간도 예뻤다. 짙은 속눈썹이 아래로 내려가고 새근거리면 너무 예뻐 해가 뜨는 것도 모르고 바라보는 날도 있었다.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은 나의 아가.


나만   있어 억울했던 수유는, 역설적이게도 나만 느낄  있는 순간을 선물해주었다.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던 눈빛을 기억한다. 아마 그때부터였나 보다. 내 눈에 평생 벗겨지지 않을 콩깍지가 씐 날이.



내게 충분한 행복을 주었던 나의 아가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글로 남겨 본다. 너와 내가 연결되어 있었던 그 시간과 헤어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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