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커피 연대기
커피의 시작은 고등학생 시절 독서실이었다. 잠이 쏟아지던 여름 어느 날 밤. 친구에게서 자판기에 있던 파란 캔을 건네받았다. 친구는 칸막이 책상에서 고개를 쭉 빼고는 손으로 목을 가리켰다. 작은 물방울이 송송 달린 캔을 목에 대니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놀란 나를 보고 친구는 끅끅 웃었다. 잠이 확 달아나던 그날 이후, 자판기의 레쓰비는 독서실의 단골 친구가 되었다. '오늘은 열심히 공부하고 말 테다!' 내 다짐은 커피를 마실 때만 유효했다. 고 카페인 함량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상에 엎드린 채 침까지 흘리며 참 잘 잤다. 공부는 안 하고 또 잠들걸 알면서도 캔커피는 끊을 수 없었다. 오늘은 공부를 할 것 같다는 달달한 유혹이랄까.
스무 살의 어느 날. 이사로 한동안 못 보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친구는 강남의 어느 카페 앞에서 보자 말했다. 처음 가본 카페는 근사했다. 커피라고는 레쓰비 밖에 모르는 나를 위해 친구는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주문해 주었다. 곧이어 우리 사이에 카페라테와 녹차라테가 올랐다. 거품에 하트가 그려져 있던 커피를 두근거리며 받았다. 하트가 망가지지 않게 조심히 마시는 순간 우유 비린내와 함께 쓴 커피맛이 올라왔다. 단 커피만 먹던 나는 사뭇 놀랐다. 내 표정을 보던 친구는 웃으며 음료를 바꿔주었다. 진한 초록색의 녹차라테는 의외로 달고 맛났다. 친구에게 미안했지만 그 쓴 커피잔을 다시 들고 싶지는 않았다.
어른 된 기념으로 한 꼬불한 파마와 강남 간다고 눈두덩이에 올린 분홍색 셰도우 때문이었을까? 나는 어쩐지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쓴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친구와 달리 나는 달달함을 못 버린 설익은 아이 같았다.
취직 후에는 회사 안 커피숍을 다녔다. 아메리카노는 아직 썼지만, 시럽 들어간 카페라테는 마실 줄 알게 되었다. 명찰 목걸이를 하고 커피 주문하는 멋진 어른이 됐건만, 현실은 전혀 멋지지 않았다. 혼나고 혼나고 또 혼나는 일상이 이어졌다. 사회생활은 에스프레소처럼 쓰기만 했다.
회사 일은 쓰디썼지만, 나의 20대는 때때로 달기도 했다. 동기와 선배 욕을 잔뜩 하고 마시는 바닐라라테는 고소하게 달았고, 지금은 남편이 돼버린 (구) 남자 친구와의 캐러멜 마키야토는 이가 썩을 만큼 달달 했다.
아메리카노를 정복한 건 아이를 낳고 나서다. 밤새 우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커피는 기호식품이 아니었다. 나를 눈뜨게 하는 보약이었다. 아이 우유는 줘도 내 커피에 우유 탈 시간은 없었기에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자리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릴 여유도 없었다. 커피 메뉴는 유일했다. 아이가 컵을 엎어도 화상 입을 리 없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는 써서 도저히 못 먹겠다던 아메리카노를 한 대접 마실수 있는 30대가 되었다. 아이에게 화가 나 열이 뻗치면 얼음 잔뜩 넣은 커피로 마음속 불을 진화했다. 친절하게 아이를 키워낸 건 8할이 카페인 덕분이다. 암만.
아이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니고 한숨 돌리게 되자, 남편은 내게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을 선물했다. 커피 캡슐 1개에 600원이 넘는 가격이었지만 밖에서 마시는 것보다는 싸다는 정신승리를 하며 캡슐을 맛 별로 향별로 잔뜩 구매했다. 내친김에 우유 거품이 올라가면 예뻐 보이는 도자기잔과, 차가운 커피를 담았을 때 멋진 유리잔도 구입했다. 첫째는 유치원에, 둘째는 어린이집에 간 아침 10시. 캡슐을 딸깍 넣어 에스프레소를 뽑고, 우유 거품을 풍성하게 내어, 설거지하기 어려운 예쁜 잔에 담아 라테를 마셨다. 커피 한잔에 사치를 잔뜩 담아 마시면 볼이 페일만큼 큰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를 떼놓고 이렇게 즐거워해도 되나 싶게 여유로운 커피타임은 만족도 200% 였다.
아이들이 모두 초등학생이 된 지금. 한계 없이 마셔댔던 나를 향한 카페인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몸이 커피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시면 마실수록 내성이 생겨야 맞건만, 내 몸은 되려 예민해져 버렸다.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100% 확률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전이라도 안심할 수는 없다. 2샷 이상의 커피를 마시면 술 마신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코로나에 걸린 이후에는 증상이 더욱 심해져, 금주하듯 커피를 끊어야 했다.
몸이 회복된 후에도 그때의 몸상태가 무서워 예전처럼 편하게 마시지 못한다. 캡슐을 끊고 드립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고양이 똥으로 만들었다는 루왁커피까지 드립백을 여러 개 바꿔가며 마셨지만 맞는 원두를 찾지 못했다. 커피 유목민이 되어 괴로워할 때, 내 눈에 길쭉한 인스턴트커피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내 몸은 인심 쓰듯 하루에 인스턴트커피 2봉을 허락했다. 다른 커피에 반응하던 내 심장은 인스턴트커피에는 속아 넘어갔다. 맥심용 작은 커피잔도 생겼다. 여러 차례 마시며 물을 적게 잡는 게 내 입맛에 맞는다는 것도 알아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난 아침시간. 말끔하게 청소한 집에 앉아 노란 맥심 봉지를 뜯는다. 컵에 와르르 가루를 쏟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녹인 뒤 작은 얼음 한 조각을 넣는다. 바람이 잘 통하는 베란다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커피물은 마시기 딱 좋은 온도가 된다. 양이 적어 몇 초면 바닥나는 커피를 방정맞게 호로록거리다 한입에 털어 넣으면 크으~소리가 절로 난다. 남편은 아저씨처럼 마신다고 놀리지만, 요 커피는 크으 소리가 나야 정석이다.
피곤한 삶. 편히 기댈 곳은 역시 커피인가 싶다. 집중해야 할 순간에 집중력을 주고, 쉬고 싶을 때 잠깐의 여유도 준다. '커피 한잔의 여유' 오래전 광고 문구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노란 봉지가 내 삶에 깊이 들어왔다.
나도 맥심 비율처럼 딱 맞는 비율을 가진 글을 쓰고 싶다. 아메리카노도 라테도 좋지만 가끔 생각나는 진한 맛. 얼마나 써야 그 비율을 알아낼 수 있을까? 물을 끓이고 컵을 준비해 커피를 타는 매일의 순간. 그 어디쯤에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