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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Jun 27. 2022

출동이다! 소나기 특공대!

우리는 여름의 정오를 통과 중이다. 등 뒤에 용 한 마리가 불을 뿜으며 쫓아오는 것 같은 뜨거운 여름. 갑자기 해가 구름 뒤로 숨는다. 아이들과 나는 창문 앞에 앉아 먹구름이 해를 잡아먹는 모습을 두근거리며 바라본다. “쏴아!!!”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아이들 뒤로 내 눈이 한순간 반짝인다


우비 입어!! 출동이다!!


어리둥절한 아이들에게 우비를 입히고 샌들 끈을 단단히 조여준다.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미리 신나 버린 엄마를 보며 아이들은 영문 모를 표정이다. 땡.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우리는 대차게 내리는 빗속으로 뛰어들어간다.



놀이터 정자까지 뛴다. 우산 없이 맞는 비는 상쾌하다. 정자에 모여 숨을 고른 후 웅덩이를 찾는다. 그리고 신나게 뛰어올라 웅덩이로 착지한다. 최악! 물웅덩이가 갈라지며 빗물이 모두에게 튄다. 금지된 것의 짜릿함. 아이들 깔깔대는 웃음이 빗소리에 묻힌다. 나는 더 큰 웅덩이를 찾아 아이들을 부추긴다. 늘 “안된다” 외치던 엄마는 지금 없다.


우비 모자까지 흙탕물이 가득이다. 더러워진 모자를  벗고 얼굴을 하늘로 향하여 비를 맞는다. 하늘이 샤워기 헤드가 되어 얼굴에 물을 쏟아낸다. 목욕할 때 거품 한 조각과 물 한줄기에도 예민한 둘째는 어째 눈에 물이 들어가도 울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젖었다. 다음은 빗물 놀이터 개장이다!


물로 흥건한 미끄럼틀은 속도가 빠르다. 미끄럼틀 끝 바닥에 내려왔는데도 몸이 쭈욱 미끄러져나간다. 우리는 차례로 그네도 탄다. 몸집 큰 엄마가 그네에서 미끄러지자 아이들은 더 크게 웃는다. 장난꾸러기 둘째는 빗물 찰랑이는 바닥에서 앞구르기도 한다. 말 잘 듣는 첫째가 망설이는 틈에 엄마도 멋지게 구르기에 도전한다. 아이는 공벌레처럼 동그랗게 성공했지만, 엄마는 애벌레처럼 말았던 몸이 쭉 펴지며 철퍼덕 돌아눕는다


우리는 두어 번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를 더 뛰었고 누가 더 큰 웅덩이를 찾는지 대결했다. 둘째는 한술 더 떠 빗물로 가글을 했다. 나는 이번에도 혼내는 대신에 배꼽 빠지게 웃어줬다. 규칙 좋아하는 첫째는 망설였으나 일상에서 벗어난 상황을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제지가 없어지자 둘째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 이 시간을 마음껏 즐겼다.




계획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남편의 핸드폰이 울린다. 사진 속 아이는 경주 어느 고분 앞에서 낙엽을 흩뿌리고 있다. 유치원에 있어야 할 아이다. 결석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남편의 질문이 쏟아진다. 나는 대답한다. “유치원 가는 길에 갑자기 가을 냄새가 나잖아. “ 황당한 답변에 남편은 혼란스럽다.


유치원 결석하고 즉흥적으로 떠난 경주. 차창 밖으로 아름다운 초록들.


일탈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매번 남편의 상상력을 뛰어넘었다. 4월의 봄바람이 좋아서 어린이집을 빼먹고 꽃구경을 갔고, 7살의 찬란한 가을은 오늘뿐이라서 유치원을 빼먹고 기차역으로 갔다. 금기에 도전하는 . 그것이 주는 해방감을 나는 알고 있다. 엄마가 되어 “안돼!”라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살지만 나는  일탈을 꿈꾼다. 그리고 가끔 아이들도 이렇듯 자유로왔으면 한다.


 일상은 기억나지 않지만 일탈은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기억에 남으면 추억이 될 것이다.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에 남지 않을지라도 정말 신나 봤던 기분은 아이들 가슴 어딘가에 남을 거라 믿는다.

거창해질 필요도 없다. 오늘 하루에 의미가 없어도 어떠하랴. 우린 오늘 정말 신났고. 그거면 됐다.


 금지 투성인 일상을 보내며 자유로운 하루를 그려보곤 한다. 다음은 어떤 특공대가 될 것인가?  무계획의 짜릿함. 나는 다음 일탈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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