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인 둘째 담임선생님께 하이톡(학교 문자)이 왔다. 이 시간에 오는 문자는 나를 긴장시킨다. 다치거나 다치게 하거나, 이게 아니라면 수업 중 연락이 올 일은 없다.
아침부터 이가 빠질 것 같다고 학교 안 가겠다는 둘째를 협박 겸 설득하여 보낸 터였다. 아이는 엄마에게 통하지 않자 선생님께 엄살을 피웠다. 그리고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아이는 보건실까지 방문했다.
잘 먹던 아이가 점심도 거르고 겁내 하자 친구들이 아이에게 몰려들었다. 옥수수처럼 툭툭 빠지는 이는 친구들에게도 일상이었다. 마스크에 가려 안 보이지만 1학년 아이들은 모두 이 한 개쯤은 없는 상태일 것이다. 당해본 사람만 아는 기분인지, 친구들은 둘째에게 폭풍 공감을 하며 위로를 건넸다.
" ㅇㅇ아 괜찮아? 내가 이 빼는 법 알려줄까? 혀로 날름날름 밀어봐. 나 그러다 쑥 빠졌어 "
" 맞아 맞아. 나는 물티슈로도 뺐어. 이를 꽉 잡고 당기면 금방 빠져. 치과 가기 싫으면 물티슈로 해봐"
" 너는 몇 개 없어? 나는 지금 3개 없어. 그래서 깍두기 못 먹어. 깍두기 앞니에 끼워봤어? 빨간 이 같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어제 시키고 남은 치킨을 먹으며 못다 한 엄살을 피운다. 점심을 먹지도 못할 정도로 무서웠다는데, 허기는 그보다 더 무서운가 보다. 점심은 못 먹으면서 딱딱해진 튀김은 3개째 집는 아이손을 보자니 헛웃음이 나온다. 아이는 한 손으로 치킨 조각을 오물거리며, 다른 한 손은 초코머핀 비닐을 벗기며 말한다. "엄마 우유! 우유도 주세요." 아이는 우유를 단번에 들이켜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 표정이 한껏 비장해진다.
"엄마! 치과 가요! 실로 뽑느니 치과를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엄마보다는 의사 선생님을 신뢰하는 아이의 판단력에 박수가 절로 나온다. 이가 너무 아파 태권도도 못 가겠다고 생떼를 피우는 아이와 치과로 향했다. 접수를 하고 기다리는데 바삐 나오느라 양치를 안 한 것이 생각났다. 양해를 구하고 치과 한편에 마련된 세면대에서 일회용 칫솔로 양치를 시켰다. 너무 아파 칫솔도 못 들겠다는 엄살쟁이의 이를 닦는 순간. 아이가 입술에 피를 묻힌 채 까르르 웃는다.
또르르. 세면대로 작은 이가 빨간 길을 내며 굴러간다. 칫솔을 이에 대는 순간 흔들거리던 이가 툭 빠진 것이다. '이럴 거면 하루만 더 기다려볼걸..' 접수대의 간호사 선생님께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상황을 설명한다.
우리는 방금 들어온 치과를 나선다. 둘째는 거즈를 물어 발음되지 않는 입을 오물거리며 말을 한다. 요지는 이렇다. 내 덕분에 치과 치료비를 내지 않았으니 그 돈으로 약국에서 비타민 사탕을 사야겠다는 것이다. 스스로 치과에 간 것도 대견하니 약국 옆 아이스크림가게에도 들르겠단다. 허락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약국으로 쏜쌀같이 뛰는 둘째 등을 보며 웃음이 나온다. 뻔뻔하기로는 8살 중에 최고다.
간식거리를 잔뜩 들고 집으로 온 아이는 곧장 화장실로 향한다. 거울을 보며 휑 비어버린 잇몸을 관찰한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아이는 별안간 양치컵에 물을 잔뜩 따라 입에 머금는다. 다음 수순을 알기에 나는 재빨리 화장실 문을 나선다. 급해진 둘째는 도망가는 내 등에 물을 뿜어낸다. 빠진 이사이로 물줄기가 쏘아져 나가는 게 물총이 따로 없다. 동생 이 빠진 소식에 구경온 언니가 대신 물벼락을 맞는다. 심통 내는 첫째와 깔깔거리는 둘째 웃음소리로 화장실이 소란스럽다.
아이는 잠들 때까지 빠진 이로 장난을 친다. 생일 초에 불을 붙여달라 조르고는 빠진 이사이로 바람을 불어 끈다던가. 식빵 조각을 끼워 넣고 새 이가 벌써 났다고 자랑을 하는 것들이다. 몇 번째 보는 장난인데도 나는 볼 때마다 웃음이 터진다. 아이 장난으로 화장실과 식탁이 엉망이지만, 이때만 할 수 있는 장난이니 너그럽게 받아준다.
잇몸만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토끼 같은 아랫니 2개를 시작으로 하얀 조각돌 같은 이로 입안이 빼곡해졌다. 밤새 울며 한 이앓이가 억울하게도 힘들게 난 이는 미련도 없이 빠진다.
새로 나는 이처럼 아이는 새로이 쑥쑥 자란다. 키가 자라듯, 텅 비어버린 잇몸은 곧 새로운 이로 채워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겠다. 이를 잔뜩 들어내 놓고 웃는 예쁜 웃음을 기억에 새기며.